오랫만에 겨울다운 날씨다. 봄. 여름. 가을을 몸으로 받아드린 수목은 잿빝 겨울과 어울린다. 도시와 달리 산길의 체감 온도는 더욱 떨어지겠지만 우리는 "...답다"라는 표현에 익숙하지 않다. 아니 잊고 사는 듯하다. 사계, 의식주, 심지어 성별마져 구분이 모호한 세태를 수용하기 곤란하니 구세대인가?
대구 시민의 심장이기도한 앞산 고산골. 겨울다운 날씨를 만끽하려고 등산, 운동에 나선 시민들의 발길로 인해 이른 아침 산길은 분주하다. 가깝게 위치하여 자주 뵙지 못하는 법장사 삼층탑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현재 위치로 옮기기전 2000년 이전(?)에 들렸으니 거의 10년만에 해후다.
많은 대구 시민들은 팔공산 자락에 무수히 분포한 불교문화유산은 알지만 앞산으로 불리우는 대덕산 법장사 삼층탑은 인지를 잘못하고 있다. 하지만 앞산에도 고려 태조왕건의 일화에서 유래한 임휴사, 안일사, 은적사 등 천년가람이 자리하고 있다.
작은 암자처럼 아늑한 법장사 역시 절의 창건 시기를 대변해주는 3층탑과 옛스런 석축이 있으며, 사찰명에서 높은 법을 조용히 간직한 사찰임을 은은히 풍기고 있다.
오늘 만나려는 3층탑에는 달빛에 젖은 이야기가 전해온다(현재 법장사가 고산골에 위치해 있어 고산사 전설로 이해하고 있다)
"신라 말엽 왕실에는 임금의 대를 이을 왕자가 없어 걱정이 컸다고 합니다. 애가 탄 왕은 각지의 용한 의원을 모두 부르고 좋은 약을 다 썼지만 그러던 중 어느날 꿈에 이튿날 왕의 명을 받은 신하는 경주 서쪽 지방을 돌아다닌지 보름만에 다다른 곳이 고산골이었는데 앞뒤가 산으로 포근히 둘러싸인데다 사시 사철 옥 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산세가 절 짓기에 안성 맞춤이었다.
왕은 곧 이 곳에 절을 짓고 이름을 고산사라 불렀다. 왕비는 이 절에 와서 백일기도를 드렸는데 곧 태기가 있어 옥동자를 낳고 이듬해 또 왕자를 낳은 기념으로 삼층탑을 조성했다. 그 뒤 고산사에는 자식없는 부녀자들의 백일기도 행렬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상하기단에는 우주와 한 개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우주만 표현한 탑신은 1층에 비해 2.3층이 낮아 부조화스럽다. 1층 몸돌, 1~3층 옥개석은 본디의 부재이며 옥개받침은 4개이다. 낙수면은 완만하며. 반전은 부드럽고, 풍탁 자국이 남아 있다. 상륜은 멸실되었지만 노반을 복원하였다.
기단의 우주 탱주, 몸돌 우주와 옥개받침
천년세월 민초들에게 온몸을 내어준 흔적이 뚜렷한 석탑. 아직도 못다준 자비를 전해주려는듯 앞산을 찾는 등산객의 친구가 되어 절집 툇마루를 내어 준다. 그들의 친구가 되면 그만이지 법장사 홈페이지, 문화재청 전문설명에 옥개받침을 5단으로 표현한 오류에는 관심이 없다. 2009.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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