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괴산군

[스크랩] 괴산...사리 봉학사지 석불.5층탑

임병기(선과) 2008. 7. 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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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에서 멀리 보이는 낮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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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사 대웅전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어느시절 잘 난 집안 때문에 초토화된 봉학사에 자리한 보광사, 산길을 돌고 돌아 보광사에 들렸다. 사리면이라는 고운 지명도 맘에 들고 고요하기 그지없는 절집도 안온하다.

 

갖추어진 전각도 없이 화장이 수줍어 고개 숙인듯한 단촐한 대웅전이 객을 반기고,스님이 출타중인 산골 적막한 절간에는 바람도 파문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뒷굼치를 들고 지나간다.  어쩔수 없이 발자국을 내고 적막한 분위기를 깨어야만 하는 내가 한없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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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사지 석조여래

 

보광산 봉학사지 폐사지에 불신만 남아있던 불상이었으나 불두를 찾고, 왼팔목 등을 복원하여 보광사에 봉안하였다. 나발의 머리 상호는 원만하고 부드러우며 삼도가 뚜렷하고,법의는 우견편단, 항마촉지 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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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사지 석조여래와 관련해서 서글픈 전설이 전해 온다. 조선 헌종 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金素)가 죽어 명당을 구하다 마침 봉학사(鳳鶴寺)터가 금계포란형의 천하의 명당임을 알고 절을 폐하고 묘를 썼다. 이때 이 부처님은 목이 부러지는 운명에 처해 지금의 보광산 언덕에 묻히게 된다.

 

이로부터 백년 후 보광산 아래 마을에 사는 손씨는 똑같은 꿈을 세 번이나 꾸었다. 스님 한 분이 나타나서 "나는 백년 동안이나 묻혀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보광산에 올라가 언덕을 파면 돌부처가 나올 것이니 잘 봉안하라."는 꿈이었다. 그래서 손씨는 십여 명의 동료를 모아서 언덕을 파고 이 부처님을 모셔다 지금의 보광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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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사지 5층탑

 

환경이 사람의 심성을 가꾼다고 했던가. 텅빈 절집 요사에서 인기척에 고운 보살 님이 수줍은 얼굴로 나오신다. 보살님에게 여쭈어 보광사 뒤 산길을 걸어 봉학사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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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사지 5층석탑은 고려시기로 알려져 있으며 기단부가 멸실되어 옛적 그어느날의 사연을 짐작케한다. 몸돌에는 우주가 모각되었고 옥개석 받침은 5단이며 낙수면 경사는 완만하다.면석에는 아무런 수식이 없고, 모퉁이에는 우주가 조각되어 있다.


전각의 반전은 희미하며 상륜부에는 복발만 보인다. 1966년 이 석탑의 2층 옥개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청동합에 들어있던 청동불상에서 ‘鳳鶴山 鳳鶴寺’라 쓰여진 시주문이 발견되어 봉학사 옛절터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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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부재는 객을 마음을 심란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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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년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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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절집을 철저하게 망가트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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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학사지를 차지한 그분의 묘소

 

엄청 넓은 부지에 문,무인석, 망부석을 갖춘 민가 묘이다. 전통사찰 정보에는 묘지의 사연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선 헌종 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金素)가 죽어 명당을 구하다 마침 봉학사(鳳鶴寺)터가 금계포란형의 천하의 명당임을 알고 절을 폐하고 묘를 썼다. 이때 이 부처님은 목이 부러지는 운명에 처해 지금의 보광산 언덕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하루는 김소의 자손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서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 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자손은 귀가 솔깃해서 스님의 말을 따랐으나 오래지 않아 집안에 화가 겹쳐 망하고 말았다. 물을 막음으로 해서 금계가 품고 있던 알이 다 썩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당이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고 지은 인연에 따라 복이 되는 곳을 이르는 것이다. 불가에 복전(福田)이란 말이 있다. 복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명당이나 복전이나 그 자체가 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복은 명당을 운위하는 사람, 복전을 일구는 사람, 그 사람이 짓는 수많은 행실의 결과로 만들어지고 창조되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에게는 명당도 복전도 따로 없다. 지장보살에게는 지옥도 복전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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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용서하고 이해해야 한다.

 

악업도 인연이기에...

 

2008.06.2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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