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구례군

[스크랩] 구례...사성암

임병기(선과) 2008. 6. 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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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즐거움이 여행이라면,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이 답사인가? 머슴아 둘이 승용차로 이동하면서도 끝없이 수다를 쏫아낸다. 여유롭게, 한가히 대화를 푸는 것이 아니라 촌철살인은 아니라도 방심하면 언제 가시에 찔릴 줄 모른다. 참아야 한다. 한살이라도 더먹은 내가 손해임은 명약관화한 사실 아닌가?

 

하지만 두 화상이 널푼수 지지리도 없고, 세상의 명리와 이재에 둔감하니 옛날에 태어났다면 사림의 명망받는 선비는 못 되어도 서당 훈장자리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사성암 입구에서도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도보로 사성암 오르기는 무리일텐데 라며 걱정했지만 한낱 기우였고 세상은 우리처럼 어리석지 않았다.

 

제법 가파른 산길은 엣날 이야기였고 사성암 약사전 앞까지 보무도 당당 아니지 차량도 당당하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이 되었다. 때론 무식이 현명한 행위를 유발할 수도 있지만 승합차를 대기하고 계시는 보살님들의 따가운 시선에 눈 둘 곳을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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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본사 화엄사를 창건하고 이듬해 사성암을 건립했으며, 4명의 고승,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가 수도한 곳이어서 사성암이라고 불리운다.사성암에서는 섬진강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운 구례 들녘, 어머니의 산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사성암이 위치한 오산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산 마루에 바위 하나가 있고 바위에 빈 틈이 있어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세상에 전하기를, "승려 도선(道詵)이 일찍이 이 산에 살면서 천하의 지리(地理)를 그렸다" 또한《봉성지(鳳城誌)》에 이르기를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옛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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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후단에 모셔진 선각 마애여래입상이다.  주형거신광배, 소발에 삼도가 보인다. 수인은 아미타로 보이지만 오른손에 약병을 지물로 들고 있는 약사여래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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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가 손톱으로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나이탓인지 이제는 설화가 더욱 흥미지고 정사보다 더 믿고 싶어 진다.

 

예전 같으면 약사여래불을 뵙기위해 사성암까지 올라오는 동안 세상사 근심 잊고 불치의 병도 치유되겠지만, 요즘은 시각적 즐거움에 감추어진 마음의 병이 치유될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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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길상이도 여기 즈음에서 서희 아씨를 만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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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암 발아래로 섬진강이 흐르고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구례를 ‘삼대삼미(三大三美)’의 땅이라고 했다. 지리산, 섬진강, 들판 세 가지가 크고 수려한 경관, 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 세 가지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사성암이 오산(鰲山)에 있다고 했으니 자라가 되어 목 길게 빼어 눈에 넣어두었다가 이번 남도길에서 삼대삼미를 깨우치고, 느끼어 가슴에 담고 가야할텐데....

 

2008.04.14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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