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면 냉정리에 있는 이정표석이다. 산불감시원의 친절한 안내로 쉽게 찾았다. 이정표에는 '진주북거이십리(晋州北拒二十里)’라 표기되어 있어 이곳이 한양으로 가는 길목임을 알려준다. 지금이야 조용한 시골이지만 이정표가 세워질 무렵 이곳은 번화가였을 것이다. 네비게이션, 휴대전화 등으로 더없이 편리해진 우리네 삶. 그래도 가끔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도 찾아보자.
이정표석과 관련 마구할머니의 전설을 진주시청 홈페이지에서 옮겨온다.
돌장석의 유래는 옛 조선시대의 마귀 할멈이 지팡이로 사용하던 것이라 전해지며 마귀할머니는 키가 팔 척이나 되고 힘은 황소 힘이라 감히 누가 접근도 못할 정도이고 냉정 북쪽(지금의 거창.함양지역)의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마을의 어려운 일은 도맡아 하고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되면 밤낮없이 성취해 내는 불같은 인품을 가져 정의파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그 당시의 생활상 등 모든 여건을 고려해볼 때, 개인의 욕심이 없이 나라와 지역발전을 위한 일로 발벗고 나서는 성품을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본 마을은 조선시대만 해도 진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써 고을원님이나 암행어사.사신등이 한양을 왕래하는 길목이라 잡다한 도적이나 산적들이 들 끓었으나, 마귀할머니의 등장으로 완전히 사라져 주민들의 걱정을 들어주었다.
그때 마침 진주성을 축조하는데 자재를 구한다는 방이 경상도 지역의 곳곳에 나붙자 마귀할머니는 좁은 지역에서 보다 서부 경상도를 위해 몸 바쳐 일할 생각으로 진주성에 찾아가 도와 드릴 것이 무엇인가를 문의 하자, 가장 아름답고 결이 고운 바위를 구하여 진주성곽 주위의 아름다움을 빛내주는 것이 좋겠다는 도움을 청하자, 즉시 서부경상도 지역을 밤낮없이 찾아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좋은 바위 2개를 골라 앞치마에 하나, 뒷 치마에 하나를 싸서 돌 지팡이를 짚고 진주성을 향하여 가다가 바로 본 마을에 당도하여 힘겨워 쉬고 있는데, 진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사신이 이야기 끝에 진주성의 축조가 완료되어 며칠 후에 잔치가 벌어진다는 소문을 듣자 잔뜩 화가 난 마귀할머니는 앞치마의 바위는 논바닥에, 뒷 치마의 바위는 우측 밭에 내팽개치고 돌 지팡이는 현위치에 꽂아놓고 북으로 사라졌다는 구전이 전해오고 있다.
바로 마귀할머니의 지팡이에 한양으로 가는 표를 새겨 현재 “진주 북 20리” 라는 것을 알리고 있으며, 앞치마의 돌과 뒷 치마의 바위는 경지정리 등으로 소실되었으며 마귀할머니의 충성심이나 강직한 인정이야말로 선조들의 좋은 본보기는 물론 후대에 길이 전해지고 빛내져야 할 것이다.
2008.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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