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스크랩] 예천...삼강 강당

임병기(선과) 2008. 6. 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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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나루 지근에 청풍자 정윤목이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했던 삼강강당이 있다. 그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 보자.

 

정윤목(鄭允穆)


1571(선조 4)∼1629(인조 7).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창01居士).아버지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탁(琢)이며, 어머니는 거제반씨(巨濟潘氏)로 충(冲)의 딸이다.


일찍이 가정에서 교육을 받다가 정구(鄭逑)·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세 전에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많은 서책을 읽었고, 시문에 뛰어나 일가의 체격을 이루었다. 필법이 신묘(神妙)하여 일찍이 이국창(李菊窓)의 당벽(堂壁)에 시 두 구절을 초서로 써붙였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이 그곳에 진(陣)을 치다가 글씨를 보고 경탄하며 뜰에 내려가 절하고 떠났다고 한다.


1589년(선조 22)에는 사은사(謝恩使)로 가는 사행(使行)길을 따라 중국에 다녀왔다. 벼슬에 뜻이 없어 두차례 재랑(齋郎)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1616년(광해군 8) 소촌도찰방(召村道 察訪)에 취임하였으며, 1618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실정에 불만을 품고 사직, 산수를 벗삼아 시와 서(書)로 세월을 보냈다. 만년에는 용궁(龍宮)의 장야평(長野坪)에 초려(草廬)를 짓고 마을의 자제들을 모아 가르쳤다. 1786년(정조 10)부터 도정서원(道正書院)에 제향되었다.

 

 

19세의 약관으로 부친을 따라 수양의 백이숙제묘를 다녀온후 모사했다는 백세.청풍 편액이 대청위에 걸려있어 청풍자 선생의 심성을 가늠하게 한다. 백이숙제.지주중류.백세청풍은 곧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편액으로 이해하면 된다.



 

제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예전에 청풍자 선생의 일화는 접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혹 이문열 소설 '선택'을 기억하시나요? 반페니니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작가의 13대(?) 할머님이자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을 저술한 정부인 장씨의 일대기를 기술한 내용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제가 사이버 세상에 갓 입문한 시절 콧대 높아보이는 여자분들에게 소개했던 책입니다.

 

주인공 장씨부인의 어린 시절 글씨를 보고 청풍자 선생은 "이게 과연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인가라고 찬탄 하였다고"했다는데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책을 읽은 후 속이 후련했었는데 그런 카타르시스를 또다시 맛보고 싶거든요.

 

스스로 콧대 높다고 생각하시는 옛님의 여성분들 한 번 읽어 보실라우?  못 구하시면 제가 보관중인 책 경매 붙이겠습니다.     이문열 '선택' 민음사

 

2007.08.04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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