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대구시

[스크랩] 대구 나무 답사...달성공원 순종황제 나무

임병기(선과) 2008. 6. 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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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하얀모자 쓰고 서있는 분이 이정웅님

 

한 시민단체 대표로부터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純宗)이 대구에 오셨을 때 심은 나무가 있다는 데 알고 있느냐?’는 전화가 왔었다. 모른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나는 매우 당황했다.

오래 동안 녹지부서에 근무를 하면서 지역의 오래된 노거수를 보존하기 위하여 보호수 지정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한 걸음 더 나아가‘역사속의 인물과 나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는데 평민도 아닌 황제(皇帝)가 대구에 와서 심었다는 나무를 모르고 있다니 말이 되느냐는 낭패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종 황제가 대구에 온 내용이 실린 책 <대구이야기, 전 중구문화원 사무국장 손필헌님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한국으로 건너와 1904년 대구에 정착한 일본 거류민의 한 사람인 카와이 아사오(河井朝雄)가 1930년까지 26년 간 대구에 살면서 당시 상황과 체험담을 기록한 대구물어(大邱物語)를 번역한 책>을 보면서 자료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존(至尊)인 황제의 순행(巡幸) 모습을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 상인이 쓴 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1909년 1월 7일 오후 3시 20분 착의 궁정열차로 대구에 도착하셨다. 하늘에 영광이요, 땅에는 축복이라 한`일 수많은 민중이 천지를 흔드는 환호 속에서 임금님이 탄 수레를 맞이하였다. 폐하의 차가 출발하자 군악대가 국가를 취주(吹奏) 하는데 그 장엄한 기운이 사방을 제압하고 맞이하는 관리나 시민 모두가 최고의 경례를 드리는 가운데 폐하는 덮개가 없는 수레에서 가볍게 인사하시며 숙소에 들지 않으시고 의병장을 앞세워 행렬도 엄숙한 도열 속으로 지나셨다. -중략-

폐하께서는 남한 순행의 첫날을 대구에서 보내시고 이튿날 8일 오전 9시 10분 부산으로 출발하시는데 부산, 마산의 순찰을 마치시는 12일에는 대구에 다시 오셔서 하루를 묵게 되시니 대구로서는 이중의 광영(光榮)이었다.”

“황제 폐하의 귀경길인 12일 오전 11시 이등박문과 함께 마산으로부터 봉련(鳳輦=꼭대기에 금동(金銅)의 봉황을 달아 놓은 임금님이 타는 가마)이 다시 대구에 안착하였다. 황제의 위엄은 앞서보다 더 장엄하고 시내의 장식도 지난번보다 더 한층 화려했다. 당일 달성공원에 나오셔서 폐하 손수 식수와 이등박문의 기념식수가 있었다.”

이상이 순종황제가 대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부산, 마산을 거쳐 대구로 다시 되돌아 온 장면에 관한 <대구물어>의 일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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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이 순종황제 나무, 우측이 이등박문이 식수한 나무로  이정웅님이 설명중

 

순행 뒷이야기를 보면 황제가 가는 길(현 북성로)을 갑자기 넓히고 그 것도 모자라 보기 험한 곳은 천으로 둘러쳐 당시 대구의 옥양목(玉洋木)이 동 났다고 한다.

순종황제의 대구방문은 대구시민들의 사기를 높였고, 도로축조 등으로 개발이 앞당겼던 것은 사실이나 왜 다른 곳을 놔두고 대구를 선택하였느냐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없으나 아마 두 해전인 1907년에 일어났던 국채보상운동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 이상 방치한다면 대구가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지 아니할까 하는 우려를 미리 차단하기 위하여 일본이 황제를 앞세워 민심을 무마하려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념식수를 했다는 기록은 찾았으나 무슨 나무인지, 지금도 현존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때 마침 ‘얼 찾는 모임’의 회원인 이대영님이 달성공원에 근무하고 있어 존재 여부의 확인을 부탁했다.

불과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전화가 왔다. 현존(現存)하고 있으며, 가이즈까향나무가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서울대학교 임학과 출신이면서 대구시 여러 부서에 고위직으로 있다가 퇴직한 후 주로 오래된 노거수를 찾아다니시는 정시식님께 연락을 하여 함께 확인 작업을 벌였다.

 

이 계장이 일러 준 곳을 보니 크기가 비슷한 두 그루의 가이즈까향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폼이 의도적으로 심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우선 뿌리둘레를 측정해 보니 한 때 신사(神社)가 있었던 곳에서 보아 좌측편의 나무는 285cm, 오른편은 276cm 였다. 나무를 심을 때 이등박문은 66세였고 순종은 33세였으니 만약 나이에 맞춰 심었다면 더 굵은 것이이등박문, 작은 것이 순종황제가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달성공원에 기념식수를 했던 이등박문은 그해 10월 만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사살(射殺)되고, 순종 황제 역시 이듬해 8월 일본의 병합으로 자리를 잃고 500여 년을 지켜온 조선왕조는 막을 내리고 만다.

시민의 휴식처로 변한 공원에 떡 버티고 있어 역사의 부스럼 같은 존재이기는 하나 조선의 마지막 황제가 직접 심은 나무인 만큼 두고 보았으면 한다.

출처: 대구매일/이정웅(수필가)

 

2007.06.1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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