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대구시

[스크랩] 대구 나무 답사...계성고 교정

임병기(선과) 2008. 6. 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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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박물관-동산병원(계명대 의대 부속 병원)을 거쳐 큰 길을 건넌다. 영남에서 제일번성한 시장인 서문시장과 담벼락을 나란히 한 계성학교 교정에도 근세 대구 역사와 함께한 건물이 있다.

 

핸더스관

 

이 건물은 계성학교 4대 교장인 핸더슨(H. H. Henderson)이 블레어(H. E. Blair) 선교사가 미국에서 모금한 자금으로 1931년에 2층으로 건립하였으나, 1964년 3층으로 증축하였다. 건물의 설계와 감독은 핸더슨이 하고, 기초공사는 학생들이 하였다.

 

건물공사는 중국인 벽돌공과 일본인 목수들이 담당하였다. 건물은 정면 중앙부에 2개의 탑을 두고, 옥상 파라팻(Parapet)과 탑(Turret)의 상부에 여장(女檣 : 서양의 중세 성곽의 형태)을 설치한 고딕적 양식이다.


 

1906년 대구 남성정교회 구내에서 시작된 계성학교는 경북지방 신교육의 등대였으며, 이 지역 기독교 발전의 큰 발자취이기도하다. 


아담스관

 

계성학교의 아담스관은 영남지역 첫 2층 신식건물로 경북지역 교회 대표자들의 회의가 단골로 열렸다. 3.1 운동때는 아담스관 지하에서 독립선언서를 프린트하기도 했다.

 


아담스관

 

대구 최초의 선교사인 아담스(James E. Adams)가 미국 선교사로부터 5,000달러의 건축비를 받아 1908년에 건축한 서양식 교사로서 설계와 감독은 아담스가 직접 하였고 붉은 벽돌과 함께 쌓은 석재는 1907년 대구읍성을 철거한 성(城) 돌이다.

 

 이 건물은 영남 최초의 서양식 교육을 담당하는 양옥교사라는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대구의 개신교회사에도 큰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한식과 양식 건축을 절충한 구성수법, 외관 구성, 벽돌 조적법등은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대구읍성 석축이 보인다.


개가죽나무

 

개가죽나무

 

 나태주

 

 

나무는 물과 공기만  마시고

햇빛만 쪼이고서도 하늘 향해

푸른 촛불을 곧추 밝혀 들고

흰 구름을 찬양하고

바람을 불러 더불어 놀 줄 안다

밤이면 별들을 불러 또한 그

이마꼭지에 구슬 리본으로 매달 줄 안다

 

그런데 나는 뭐냐?

아침에 밥 벅고 생선을 먹고

점심엔 술과 고기를 먹고서도

나무보다 잘한 게 하나라도 뭐냐?

 

더구나 길을 걷다가 지친

나를 위해 나무는

두서너 평 시원한 그늘까지

아낌없이 멍석으로 펼치고

덤으로 새소리까지 들려주시지

아니한가! 

 

이 나무는 아무 데서나

뿌리 내려서 자라는

이름까지도 천하고도 흔한

개가죽나무다, 나 오늘

개가죽나무보다 나은 게 뭐냐?

 

학 명 :Ailanthus altissima Swingle


잎잎은 호생하며 기수1회우상복엽으로 길이 40∼80㎝이다. 소엽은 13∼25개의 넓은 피침상 난형이고 점첨두, 원저이며 길이 7∼13㎝, 넓이 약 5㎝로 차례로 붙어 있고 소엽 아래쪽에 2∼4개의 거치가 있으며, 표면은 진한 녹색, 뒷면은 담녹색이고 털이 없다. 각 거치의 끝에 선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꽃은 자웅이가화이며 지름 7∼8㎜이고 초록빛이 도는 백색으로 5∼6월에 핀다. 원추화서는 가지 끝에 달리고 길이가 10∼30㎝로서 털이 없다. 열매열매는 시과로 적갈색이고 얇으며 피침형으로서 길이 3∼4㎝, 넓이 1㎝내외로 날개 가운데 종자가 달린다. 9∼10월에 성숙하고 봄까지 달려 있다.


수피 및 가지겨울에 잎이 다 떨어졌을 때 가지를 보면 마치 사람의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약간 오므리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비고붉은가중나무(for. Erythrocarpa Rehder) : 잎 표면이 짙은 녹색이고, 뒷면은 짙은 회색으로 열매가 붉은색을 띠는 것


말채나무

 

산형화목 층층나무과의 쌍떡잎식물. 높이 10m정도. 낙엽교목으로 나무껍질은 그물처럼 갈라지며 흑갈색이고 작은 가지에 털이 있으나 점차 없어진다. 잎은 마주나며 넓은 달걀꼴 또는 타원형이고 표면에 복모(伏毛)가 약간 있으며 뒷면은 흰빛이 돌고 거센 복모가 있으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6월에 피고 취산꽃차례로 지름은 7∼8㎝이고 꽃자루에는 거센 털이 있다. 꽃잎은 바소꼴이며 백색이고 암술은 수술보다 짧고 수술대는 5㎜ 정도이다. 열매는 둥글며 9∼10월에 흑색으로 익고 씨는 둥글다. 계곡의 숲속에서 자라며 한국·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이 나무의 유래는 멀리 조선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태조를 도와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 정도전이 산이 수려하고 나라의 중심부에 자리를 정하겠다는 긴 안목을 가지고 신도안에 내려와 그곳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벅찬 공사라 여겨 그냥 돌아가면서 그가 이정표처럼 던진 말채가 살아 말채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무럭무럭 잘 자라던 말채나무가 명종 임금 때부터는 서서히 시들시들해져 갔습니다.   한번은 전라도에 유배되었던 선비 한 사람이 유배에서 풀려 나와 한양으로 가는 길에 정도전을 생각하면서 여기를 찾았다가 말채나무 아래 비스듬히 누웠습니다. 그리고 정도전의 글을 생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워낙 먼길을 걸어온 터라 쉽게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삿갓을 쓴 선비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사지를 쭉 펴고 잠을 자느냐! 그래도 나라에 쓸만한 놈이 한 사람 태어났다고 좋아했더니 이런데서 실수를 하다니. 이봐라 넌 알고 있어라. 앞으로 국난이 있을 터인즉 그것을 즉시 알려야 하느니라. 그리고 대비를 하거라. 그래도 이놈이 드러누워 있구나. 이놈아…이놈아."라고 하면서 발로 마구 걷어찼습니다.

 

그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을 꾼 것이었습니다. 선비는 일어서서 말채나무에 몇 번 절을 하고는 한양 길을 재촉했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언덕에서 말채나무를 바라보았는데 나무가 마치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한양에 올라온 즉시 선비들을 만나 왜구들이 쳐들어 올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놈 미친 놈이구만, 이 태평성대에 싸움이라니, 그놈 유배되더니 제정신이 아니구만……."하면서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는 자기 말을 믿어주지도 않고 유배된 사람에게 쉽게 벼슬을 줄 것 같지 않아 충청도 진잠 땅에 내려왔습니다.

 

그곳에 있던 말채나무는 늠름하게 서 있었고 그는 말채나무를 보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선조 20년 경에 선비는 벼슬길에 올랐으나 국난이 임박했다는 상소문을 여러 차례 올리는 바람에 이상한 정신병자로 몰려 급기야는 관직까지 박탈당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이곳으로 내려왔습니다. 나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나중에는 나무와 친밀해졌습니다.

 

하루는 들에 났다가 말채나무 가까이 갔다가 나뭇잎이 점점 시들시들해져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러다가 나무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나무에 거름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선비의 정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시들시들해져 갔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을 깊이 하다가  조정에 징계를 써서 올렸습니다.

"대왕마마, 나라 안에 큰 난리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통첩하여 주시옵서서. 남쪽에서 오랑캐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그러나 징계를 받아 본 관원들로부터 묵살이 되었습니다. "미친 놈이 아직도 살아있구만."하고 미움만 더 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시들시들한 나무가 밤이면 울기까지 했습니다.

 

말채나무가 꼬박 하룻밤을 울 때 그도 나무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이여, 울기만 하면 어찌 하오리까. 옛날 내 발을 걷어 찰 때처럼 계시를 내려주십시오." 라고 울부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말채나무 아래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던 날 말채나무는 더욱 슬프게 울었으며 왜군들이 쳐들어왔습니다. 말채나무는 임진왜란 7년 동안 시들시들 하였다가 싸움이 끝났을 때 나뭇잎이 파릇파릇 해졌으며,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제시대 때는 그 기간이 너무 길었던지 말라 죽었다가 광복이 되어서야 새순이 나와 큰 나무로 자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달 밝은 밤에는 정진사가 무덤에서 나와 말채나무 아래로 다가와서는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새벽닭이 울기 전에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는 전설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아래 사진과 " '글 출처: 다음 블로그 HAPPY TOGETHER

 

2007.06.1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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