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문경시

[스크랩] 문경...봉서리 삼층탑

임병기(선과) 2008. 6. 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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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호계면 봉서리 봉서사지 옛절터에 복원된 탑이다. 아침일찍 대구에서 만난 님들과 오전내내 헤매인 후 어렵게 찾았다. 짧지 않은 답사 경험중 가장 어렵게 만난 문화재의 하나로 기록될만한 탑은 신라계열이면서도 경북 북부 고유 유형인 단층기단이었다.

 

동행한 님은 돌고도는 고향길이 싫지 않은 표정이지만 카맣게 타버린 내마음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필경 산양면 봉정리와, 호계면 봉서리로 각각 표기된 석탑과 두 기 불상은 동일 문화재로 판단을 내렸다.

 

 

석탑 재질를 바라보던 님은 우리고향 문경 빛깔이네요! 라고 말씀하셨지만 색감에 둔감한 나는 눈뜬 장님이다. 현재 시각으로는 좁은 바위를 기단 삼을 수 밖에 없는 주변환경이지만 신라하대 비보탑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봉서(鳳棲)로 미루어 팔공산 동화사 처럼 오동나무, 대나무가 절터를 아늑하게 품었겠지만 세월은 사적을 산속에 묻고 떠내기 탐방객의 하소연에 상처난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바위 채석을 시도한 흔적. 즉 "야질"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석탑이 자리할 바위를 부재로 활용하기 위해 채석할 까닭이 있겠는가? 미루어 짐작컨테 봉서사 창건 때에는 석탑을 세우지 않았거나, 현재 석탑은 제위치가 아닐 것이다.

 

이와관련 작은 단서가 석탑주위에 있었다. 즉 바위면에 네개의 홈이 있었다. 중국 석탑과 안강 정혜사지에 탑을 에워싼 전각 흔적이 남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석탑을 전각속에 안치하는 유형은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현재 멸실되었거나, 우리가 만나지 못한 석불좌상이 안치되었던 전각으로도 추측 가능하겠다. 


 

석탑 주위에는 금당터 부재는 물론 석탑 옥개석이 산재해 있어 쌍탑 구조 가람배치 또는 어느  시절 두 기의 탑이 가람 중정에 서 있었을 것이다. 탑속에서는 사리함이 발견되어 일본으로 반출되었으나 되찿아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봉서사지(?) 범바위

 

봉서사 보살님이 안내한 봉천사로 가던 중도에 이 곳에서 칠십년을 사셨다는 촌부와  아들을 만났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저 산 아래 마애불(?)이 있으며 위치는  당신만 알거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도 뵌지가 오래 되었고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쉽지 않다며 겨울날 꼭 오시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당신께서는 이곳의 유물이 김천 직지사로 반출된 사실과 쇠꼬쟁이를 소지한 도굴꾼이 극성을 부리던 시절도 기억하시었다. 아들 역시 유년시절에는 석물이 널부러져 있었으며 방금 우리가 보고온 석탑 옆 두그루 소나무 아래에 석불좌상이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옛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세월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않는데 재발굴을 통하여 잊혀진 사적, 숨겨진 이야기, 옛님의 숨결을 느꼈으면 좋으련만......


봉천사

 

봉서사지 탑을 지나 산길 끝에는 민가와 최근에 창건한 봉천사가 자리했다. 중정에는 자연 암반위에 불상을 모셧고 멀리 문경 산양, 예천(?)을 조망할 수 있는 비구니 사찰이었지만 산양 봉정리 탑, 불상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했다.

 

안동에서 출발한 님들이 대승사에서 기다림에 지쳐 떠나지는 않았을까?

우리의 과욕으로 소중한 인연을 놓칠 수는 없어 갈길을 재촉해보지만 범부의 머리속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애써 인연을 지으려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과유불급을 늘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왔으므로 오늘 나는 그렇게 산길을 내려왔다.

 

이미지 

산양면 봉정리 마애 관음보살...문경시청

 

다음에 인연 짓겠습니다.

 

2007.06.03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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