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홍천군

[스크랩] 홍천 / 수타사...내마음이 닫혀진 것을

임병기(선과) 2008. 6. 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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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로 향하는 이차선 도로에서 만난 포병부대 훈련 모습은 25~6년을 거슬러 올라가 내 모습을 돌아 보게한다. '주둔지 입구 통제병' 바로 저모습이 나의 젊은 날이었는데...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708)에 세워 일월사로 불렸다고 전한다. 조선 선조 2년(1569) 공잠대사가 현 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수타사(水墮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지금 있는 절은 고종 15년(1878) 크게 고친 것으로, 대부분의 건물을 이때 고쳐지었고 이름도 수타사(壽陀寺)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문화재청

 

 

                                                                   수타사 부도전

 

여러기 부도가 수타사 사세를 전해주고 있다. 청송당, 기허당, 홍우당......

 

봉황문

 

봉황문 앞에는 말밥굽인지 반월형인지 모를 연지를 조성한, 공작이 알을 품는 형국이라는 공작산 자락 수타사는 일주문은 없고 소조 사천왕을 모신 봉황문이 먼저 반긴다.  봉황문은 현종 15년(1674)에 법륜이 봉황문을 세우고, 2년 후인 숙종 2년(1676)에 여담이 사천왕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안내문에는 소조 사천왕상을 조성 방법이 -- 나무로 기본형태를 잡은 후 새끼줄을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발라 빚었다--설명되어 흐뭇함을 감출 수 없다.

 

산지가람인 수타사는 천왕문을 앞에 배치하고, 누하진입이 불가한 낮은 강당, 천왕문에서 일직선 상의 금당을 조성하는 등 호남지방 평지가람 가람구조와 흡사하여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수타사 동종

 

좌체우용(體는 본질이요, 用은 작용이다)에 충실하여 가람 우측에 범종각을 조성하여 조성연대(1670)가 알려진 범종을 모셨다.  18세기 범종 주조 장인은 비구 사인 스님으로 조선시대 범종의 특징을 고루 보여 주고 있다.

 

조선범종은 상중하대가 뚜렷하고,  용뉴는 두마리 용, 상대와 분리된 젖가슴(유곽), 자유스런 당좌 등의 특징이 있다. 임진왜란 후 복고풍이 살아나지만 신라 종의 상하대, 상대에 붙은 유곽, 9개 젖꼭지, 비천상, 주악상 2개의 당좌 등의 특색이 조선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대적광전


요사 중수를 위해 조용한 절집에 뽀얀 먼지와 굉음을 품어내도 무심히 미소 짓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산세에 걸맞게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모습이다.

 

덤벙 주초 3*3칸, 다포, 겹처마이며 조선후기  금당형식인 불단을 후벽과 분리하였고, 연봉장식, 의미를 알 수 없는 용마루의 파란기와 2장, 벽면에는 민화풍의 그림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청수대(淸水臺)


통도사 용화전 앞 봉발대와 같은 상징물? 복련이 고운 하대, 긴 중대, 앙련이 핀 상대 위에는 조석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청수(淸水)을 올리는 용도의 석조물이다.

 

수타사도 여느 절집과 다름 없이 주불전인 대적광전 보다 화려하게 원통보전을 조성하여 1000분의 관음, 십일면, 천수천안 관음을 모셔 주객이 전도된 듯 하다.

 

영산회상도, 지장시왕도가 보관된 박물관 '염화각'은 문이 닫혀 있어도 개방해주시는 분의 연락처가 친절하게 남겨져 있었지만, 원통보전을 향한 닫혀진 내마음이 열리지 않음을 부끄러워하며 산문을 나섰다.

 

2006.03.1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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