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양군

[스크랩] 영양 / 월담헌과 사월종택

임병기(선과) 2008. 6. 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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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읍내를 벗어나 화천리 삼층탑으로 가다보면 반변천의 지류인 하원천변에 한양조씨의 동족마을인 하원리에 닿게되며 사월종택은 동자중추부사를 지낸 사월 조임의 고택이다.

 

경북 북부 지방의 한양 조씨들이 대부분 기묘사화 때 화를 입었거나, 피해서 낙향한 경우처럼,하원리의 한양조씨도 사월의 조부가 사화를 피해 영주 문수-안동 풍산을 거쳐 이곳에 세거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월종택 / 사진 문화재청

 

사월종택의 사랑채인 월담헌은 경북북부 지방의 사대부가의 모습처럼 격을 높이기 위한 누마루를 갖추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ㅁ자형이나 굳게 닫힌 안채를 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사당은 정침 동쪽에 자리했다.

 

안내문에 의하면 궁중건물에서만 채택되는 자좌오향의 길지로 정남향이라 한다.하지만 음택 풍수에서는 가장 많은 좌향이 자자좌향 아니던가? 음택,양택 풍수가 분명 다르겠지만,초기의 유교질서가 많이 문란해진 영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랑채인 월담헌의 현판은 서애 유성룡의 제자 창석 이준의 글씨이며, 월담헌(月潭軒)의 의미는 주자의 무이구곡 중 사곡 "月滿空山水滿潭에서 가져왔다.

 

四曲東西兩石岩 사곡동서양석암
岩花垂露碧氈 암화수로벽전삼
金鷄 罷無人識 금계규파무인식
月滿空山水滿潭 월만공산수만담

네 굽이 동서 두 바위들에
바위에 꽃들은 이슬 머금어 푸르게 드리워 있더라
금 닭이 울어 파함을 아는 이 없는데
달은 빈 산에 가득하고 물은 못에 가득하더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구곡이 주자를 흠모하여 무이산 무이정사에 은거하며 제자를 양성한 주자의 무이

구곡을 모방한 사대주의의 발로지만 과거의 역사를, 문화를 직시하는 것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요상한 것은 사월종택의 안내문이다,

"사월종택은 선조 35년(1602)에 지으진 건물"이라 했는데,"임진왜란의 병화도 면했다"란다

??????

임진왜란은 1592년에 발발하여 7년 전쟁인데 어째서 지극히 당연한 저런 안내문이 세워졌을까?

 

2005.05.2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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