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양군

[스크랩] 영양 / 오일도 생가, 측백수림

임병기(선과) 2008. 6. 6.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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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녁 놀
                               
작은 방 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버려라.
하늘 저편으로
둥둥 떠가는 저녁놀!

이 우주에
저보담 더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랴.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 속으로 ―
붉은 꿈나라로 ―


 

답사는 준비과정을 거쳐 동선을 계획해야 하지만,  준비없이 홀로 떠난 여로에 예상 못 했던

대상과 조우하는 맛도 그만이다. 오일도 시인의 생가 역시 반변천을 거슬려 영양읍내로 가는

도중에 우연하게 안내문을 발견하고, 낮은 흙담들이 정겨운 마을 가운데 시인의 생가를 들리

게 되었다.

 

워낙에 문학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중생이라 오일도 시인 역시 처음 접하는 분이기에 생가 

솟을 대문 앞 안내문으로 비로소 님을 알게되었다. "본관은 낙안. 본명은 희병(熙秉).

14세까지 고향에서 한문을 배웠으며 영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제일고등

보통학교에 다녔다.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강습소를 다녔으며, 1929년 릿쿄대학[立敎大學] 철학과를 졸업했다.

귀국한 뒤로 1년 동안 근화학교(지금의 덕성여자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맏형 희태

(熙台)에게 돈을 얻어 1935년 2월 시전문지 〈시원 詩苑〉을 펴냈다.

 

1935년 12월 〈시원〉 발행을 중단한 뒤, 〈을해(乙亥) 명시선집〉(1936)과 조지훈의 형인

조동진(趙東振)의 유고시집인 〈세림시집〉(1938)을 펴냈다. 1942년 고향으로 내려가 지내다

해방 후 서울로 올라와 〈시원〉을 속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당시 정치와 사회의

혼란 속에 밤낮으로 폭음하다 간경화증으로 죽었다.

 

1925년 〈조선문단〉에 시 〈한가람 백사장에서〉를 발표해 문단에 나왔으며, 계속해서

시원〉에 〈노변의 애가〉·〈눈이여! 어서 내려다오〉·〈창을 남쪽으로〉 등의 동양적 서정을

바탕으로 암울한 시대를 읊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밖에 한시와 한역시를 몇 편 남겼으나 생전

에 단 1권의 시집도 펴내지 못했으며, 1977년 문화공론사에서 유고시집으로 〈지하실의 달〉

을 펴냈다."..다음 검색

 

모두의 저녁놀은 그의 대표작이며 마을앞 소공원에 시비가 있다고 하는데 이놈은 반변천 건너

측백수림에 현혹되어 찾지도 못했으니...

영양측백수림(천연 기념물 114호)/사진 문화재청

국보 1호는 숭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천연기념물 1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내추측으로는 대구 시내에 거주하는 초교생을 둔 어머니는 거의 90% 이상 알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천연기념물 1호가 바로 대구 동구 도동의 측백나무 숲이기 때문이며,초등학교의 여름방학에 조사해야 할 과제물로 꼭 등장하기 때문이다.나역시 잘난 아들놈 덕에 현장조사를 했었다.

 

달성 도동의 측백수림 군락보다는 분포 면적이 좁아 보이나 오일도 생가 건너편 반변천의 가파른 절벽에 뿌리를 내린것을 비롯 도동의 주변 환경과 아주 흡사해 보인다. 

측백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까닭은 "측백나무 자생지는 우리나라의 측백나무 자생지가 그리 많지 않으며, 측백나무가 중국이 원산지이고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도입되어 들어왔다는 학설을 부인하는 중요한 학술적 증거가 되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2005.05.2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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