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화순군

[스크랩] 화순 / 한산사지 삼층석탑,남덕원 비

임병기(선과) 2008. 6. 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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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슬슬 그치는 것이 내가 쌓은 선업의 결과라는 것을 두 화상은 알기나 할까?
잠시도 끊어지지 않는 대화가 간만에 에로,야로틱한 화제를 벗어나 아주 긍정적으로 흐른다.
"경치가 쥑이네!"라는 유현의 말에 "한 폭의 동양화"라며 상감이 맞장구를 때린다.


내눈엔 낮지만 골기가 흐르는 암산, 즉 火의 기운이 강하여 도사들이 배출되는 형국이라 생각하며 달구지를 몰아도 한산사 탑은 보이지 않고, 동복면 소재지에 와서야 스쳐지났음을 감지하고 오던길을 되돌아 갔더니,기가막혀!! 두 놈의 화상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벌렸던 그마을 한쪽에 탑이보인다. 버스 승강장에도,자연석 마을 이정표에도 분명 탑동 이정표가 보이는데...


그 상황 재연을 위해 유현이 쓴 리얼리한 답사기를 옮겨 본다.

"[다시 내려온다. 비가 슬슬 그칠 모양이다. 산머리에 구름이 걷히고 있다. 경치가 끝내준다.
운전하는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용히 "우와! 경치 쥐긴다."라고 하면서 담에 이 동네에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초시행님은 "이건 한 폭의 동양화다. 동양화"라며 감탄은 자아낸다. 그러다 보니 동복면소재지까지 와버렸다. 할 수 없이 시장터의 아주머니께 물어본다.
"탑리가 어딥니까? 탑이 서 있는 곳을 찾는데요."
"오매... 지나쳐부럿스... 다시 돌아서 한창 가다보면 저 너머에 탑이 보일것이구마."

한창 = 얼마만큼? 저 너머 = 어느쪽에?... ㅋㅋㅋ
돌아서서 조금 지나자 할 수 없이 다시 우체부 아저씨께 물어본다. "약 3킬로정도 가다보면 왼편에 있어요"하더니 저 앞에 가는 우체부를 따라가라한다... 쥔장 제법 밟더라... ㅋㅋㅋ

탑이 있는 그 곳이 어디메뇨 하니, 한 폭의 동양화요 경치 죽인다며 이곳에서 살고싶다는 맘을 먹었던 곳이다. 대뜸 주인장 한 마디가 날아온다.
"이것들이 탑을 보라고 했더니 뭐 경치가 어떻고 풍경화가 어떻다고."
갱상도 말로 하면 '용코로 걸렸다.' 이건 빼도박도 못하고 당해야만 한다. 조용히 행님 사진이나 찍읍시다... ㅋㅋㅋ]"


안내문을 보니 寒山寺터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선승, 시승이었던 유명한 한산스님과 관련이 있었단 말인가?
한산과 습득 스님은 잘 알지는 모르지만 수 많은 일화, 기행이 전해오며 미친 스님으로 여기기도 하고,일설에는 한산스님은 문수보살, 습득 스님은 보현보살의 환생으로 일컫기도 하며, 오늘날 달마도와 함께 선화에 자주 등장하는 한산습득도에 익살스런 모습의 주인공이 바로 한산 스님이다.


석탑이 있는 동네가 塔洞이며, 마을뒤의 산이 종모양 처럼 생겨서 인지 鍾山이라 어쩌면 취락의 지명이 한산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2기단 위에 초층 2,3층 탑신의 비례가 불균형하며 고려탑 특유의 상승감도 뚜렷하지 않지만, 기단부의 우주가 별석이며,1층 탑신은 2매의 돌로 결구 탑신으로 하여 야릇한 소설을 쓰게 만든다.


저러한 유형의 석탑이 있었던가?
1층 탑신을 완성후 비례감이 떨어져 다시 1매를 쌓았을까?. 주위에 화강암이 널부러져 있는데 1매로 새로히 조성하면 될 텐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5층탑의 흔적이란 말인가? 참 묘한 탑이건만 어디에도 자료가 없으니, 대구시립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뒤져보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다시 동복으로 나와 김삿갓의 묘로도 알려진 선돌를 찾았건만 젖은 논두렁을 밟고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마을신앙과 관련된 입석이려니 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남덕원 역원비"라고 하여 확인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워 자료를 올리겠으니 우리님들은 답사 기회가 오면, 우리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동복에 있었던 남덕원은 독상리 제궁동 입구 금계산 기슭에 있었던 역원으로 인근 한천리에 검부역이 생기면서 폐지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검부역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남덕원의 폐지연대도 추정이 불가능하다. 남덕원비는 전체 높이는 320cm 폭은 130cm 두께는 위 14cm 아래 23cm이다.

비석은 거친 사암질 자연석이고 비문은 8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문 내용중 심지헌 이란 인물이 있어 확인결과 그는 동복현감을 지냈는데 1666년 9월에 부임하여 1668년 7월에 이임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비석의 건립연대 또한 무신년 3월인데 이임하기전 심지헌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문을 쓰고 전각글씨를 새긴 사람은 광산김씨 김진도 인데 그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남덕원비의 문화재적 가치는 역원에 대한 유일한 비이며 동복현의 역사와 관련시켜 살펴 보면 충분한 역사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17세기에 새겨진 행서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17세기에 이러한 거친 자연석에 행서가 남아있는 경우가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교통시설이자 공공기관이었던 역원과 관련있는 원비로서는 유일하며 건립연대가 확인된 점 등 조선시대 제도사, 사회사와 지방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화순군청 홈


2005.03.22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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