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화순군

[스크랩] 마을 지킴이...화순 가수리 장승, 솟대

임병기(선과) 2008. 6. 6.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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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비가 옹골차게 내리지만 답사중독증 환자들은 게의치 않고, 타올을 사진기에 감고 쪼그려 쏴!! 
자세로 목장승을 담아낼려고 분주하지만, 동,서방 대장군은 마을 어귀에서 아취형으로 서서 무표정
한 표정이다.
일반적으로 마을 신앙은, 당산나무,장승, 솟대,선돌, 미륵,돌무더기 등으로 나타나며, 동서방을 명
문으로 나타낼 경우에는 오색,오방신앙의 명문 - 동방靑제대장군, 서방白제대장군,남방赤제대장
군,북방黑제대장군-으로  표기한다. 이러한 오방신앙은 사찰 천왕문의 사천왕에서도 보이며, 큰 고
을에도 미륵을 네방위에 모시기도하는데 가수리 목장승은 처음부터 동,서로만 모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상감 또는 유현이 사진을 아취형으로 잘 찍었다면 우리카페 대문 지킴이로 두고 싶은데, 하긴 두 
장승이 카페지킴이가 되는 날부터 잡귀로 오인받아 나와 두놈은 출입이 금지 될 터이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고택의 난간이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어느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지만,나는 동구밖 장승이야 말로 
우리민초들에게 진정한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쟁터에 끌려간 자식의 안녕을 기다리는 노모, 시집간 딸자식 친정 올 날을 학수고대하는 어머니,
장에 간 할머니를 기다리는 손자, 오랜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시각적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였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며, 상대적으로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도 고향마을의 그리움의 
시각적 대상은 장승이었음에 분명했을 것이다.
물론 장승의 조성 배경이 제액,벽사의 목적이라 그 이름마져 장군이라고 칭하지만 어디 무서운 장
승이 있던가? 장승 모습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모든이에게 회자되는 형용사는 푸근, 안온, 인자,친
근한 등으로 오르내리는 것은 바로 장승을 조성한 이름없는 동민들의 美를 초월한 心性 때문이 아
닐까?
창원에 근무할 때 내 생일에 유현이 선물해준 마을신앙 이라는 책에서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서 전
래 되어 오는 장승과 솟대를 만들 나무를 운반하면서 불렀다는 노래를 옮겨보면... 
모셔가세 모셔가세
모든 악귀 물리치실
추악대(推惡臺)를 모셔가세
모셔가세 모셔가세
천하대장군 모셔가세
우리마을 지켜 주실
천하대장군 모셔가세
모셔가세 모셔가세
지하대장군 모셔가세
우리마을 지켜 주실
지하대장군 모셔가세
영산신령 주신 선물
조산(造山)들로 모셔가세
가수리 장승을 지나 산길을 더 들어가면 가수 2리 산촌마을 솟대를 만날 수 있다.
솟대의 조성목적은 이승과 저승의 매개체,마을의 안녕을 비는 수호신, 행주형 형국의 돛대,화기가 
강한 지세의 비보,제액초복,풍농,다산,미륵신앙 등 다양하지만 가수리 솟대는 마을 동쪽의 촛대봉
의 화기를 염승할 목적의 비보 솟대로 앞 3기, 뒤 2기가 분리 되어 있으며 매년 1기를 바꾼다고 한다. 
솟대도 다른 마을 신앙물 처럼 마을 어귀에 세워지는데 마을 어귀의 솟대는 동민들에게는 성과 속,
청정과 부정의 경계로 인식되어짐을 알 수 있으며, 가수리 솟대가 다른 지역의 솟대와 차이가 있는
것은 오리의 입에 길고 가늘게 대나무를 잘라 잎에 물린 것인데,물에 사는 오리와 어울리도록 갈대
를 상징하여, 화기를 물고 날아가라는 의미로,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길가의 장식(?)용 솟대가 아니
라 산촌 마을에 전통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흔치 않은 솟대이기에 비가 오거나 말거나 마음만은 그
렇게 안온할 수가 없더라!!
2005.03.22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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