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고령군

[스크랩] 고령 / 양전리 암각화

임병기(선과) 2008. 6. 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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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에서 금산재를 넘어 고령읍 초입에서 좌회전을 하여 양전동으로 가는 중에 아들놈에게 
넌지시 이 길이 기억에 있느냐 물엇지만 졸업선물로 사준 전자사전에 빠져 지애비의 질문은 
관심도 없다.
대학시절 친구놈들과 투망을 던지며 천렵을 즐겼던 강가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지만 양전동의
암각화는 차양막만 설치되었을 뿐 옛모습 그대로이니 타국으로 이만 간 그 친구 중의 한 명이
유난히도 그립구먼.
'*암각화란?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전, 한반도에는 청동기 문명이 북방으로부터 들어와 생활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주요한 식량이 되는 대상들과 그들을 사냥하거나 많은 사냥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벌이는 의식과 관련된 그림들(춤추는 사람이나 악기를 부는 사람, 사냥하는 모습이나 이들을 
총괄 지휘하는 제사장)을 바위에 새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사냥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나 제사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신상으로 새기는

대상을 대체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바위의 표면을 쪼아내거나 갈아파거나 그어서 어떤 형상을 새겨 놓은 것을 암각화라 말한다.'

 

 

양전동은 어떤 난생설화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알터마을'로 불려지는 곳으로 오늘날은 제방에의해

회천의 흐름이 보호되지만 치수가 용이치 않은 시절에는 김천 수도산에서 흘러 내리는 대가천과,가야산에서

시작한 안림천이 합류하는 지점이니 수해도 심했겠지만 수렵과 채취,경작도 용이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자연 환경이 구비된 곳으로 보인다.

 

 

선사시대의 암각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새로운 가설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 현실에서 어찌 감히

나의 논리, 주장을 할 수 있겠냐만은 양전동 암각화 안내문에 충실하며 이야기를 해보자면...

 

 

희미하지만 멀리서 바위그림을 보면 바위 가운데을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의 3중 동심원이 3개 보이며

(책에서는 4개라 하지만), 이는 태양을 상징하는 무늬로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해석된다.

 

 

 

또한 양전동식 기하문으로 알려진 위가 넓고 아래가 좁게 사다리꼴 모양의 문양은 안쪽에 두어개의 구멍이

있으며 바깥면에는 선들이 짧게 그려져 있다.

 

 

안내문의 해석에 준하여 검파형 암각화로 보고, 검파형 암각화란 칼자루를 남성,안쪽의 구멍은 여성을 상징하여,

다산,풍요를 의미한다고 보며 그래서 곧 양전리 암각화는 제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어쨋든, 제사단이라면 분명 제사장이 있었을거고 그것은 계급사회가 형성되엇음을 의미하며 집단의 형성,

경작의 시작,잉여농산물과 식량확보를 위한 전쟁의 발생을 암시하는 것이니 인류 불행의 시작을 알려주는

바위그림이라 여기면 억지일가?

 

2004.02.28

사진...문화재청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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