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양산시

[스크랩] 양산 / 통도사(2)

임병기(선과) 2008. 6. 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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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로전의 전각들은 모두 남향한 여래를 모시고 있으며 관음전, 용화전, 대광명전이
일자배치로 세존비각, 개산조당, 해장보각과 나란히 서있는 영역이다.


불이문을 지나면 관음전 앞의 간주석이 기이한 석등이 보인다.
일반적인 팔각원당형, 고복형이 아니라 사각형의 간주 모서리를 모죽임하여 팔각이며
간주 가운데에 두 겹의 테를 둘러 조형미로만 생각하기엔 아쉽지 않을까?
혹 대나무의 마디를 상징하지는 않았을까?
주화문(감씨 무늬) 단청이 뿌리가 튼튼한 감나무의 뿌리를 상징하여 건물의 내구성
과 굳건한 기반을 상징하듯이...


금강계단을 중수하면서 진신사리를 모신 배경을 설명한 세존비각 앞 팔정도를 새겨 놓
은 노주석을 스쳐 민가의 솟을삼문 같은 문을 지나면 창건주인 자장의 영정을 모신
개산조당으로 솟을삼문을 세운 의미는 서원, 향교의 사당영역 출입문처럼 참도로
들어오지 말고 동입서출하라는 암시일 것이다.


중로전 영역에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은 물론 해장보각 벽의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호작도의 벽화도 있겠지만 용화전의 봉발대 이다.
미륵이 하생하면 드실 수 있도록 공양을 담은 발우 모양의 석조물로 미륵하생을
염원하는 민초들의 지극한 정성의 결정체가 봉발대인 것이다.


법당 내부에 우물마루가 깔린, 마치 합장한 듯한 모습의 지권인 수인을 한 비로자
나불을 모신 대광명전은 느낌이 너무도 좋아 그냥 드러누워서 시간을 묶어두고
싶은 공간이나 어쩔 수없이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내가 밉다.


통도사의 전각 처마 아래에는 작은 꿀단지 모양의 항아리가 곳곳에 얹져 있는데
이는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물을 비보하기 위한 일종의 비보책으로 속에는 소금이
들어 있다, 즉 소금은 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법보사찰인 해인사를 내려보는 남산제일봉 정상에도 매년 한차례
소금단지를 묻어 해인사를 비보하며, 또한 해인사는 풍수에서 배가 나가는 행주형국
이라 대부분 사람들이 해인사를 들려도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돛을 상징하는 탑이
장경각 담장 너머에 우뚝 서있으니 꼭 확인해 보시기를...
사찰풍수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들은 다음기회에 곳감 빼먹듯이 하나씩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중로전, 상로전 영역의 경계는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낮은 석축이라 상로전의
금강계단 현판만 쳐다보다 가면 걸려 넘어지기 쉽상이다.
상로전은 통도사의 가람중심으로 금강계단, 대웅전, 적멸보궁의 현판이 달린 출입문
어디로 들어가도 진신사리가 부처이기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금강계단을 마주할
수 있는 丁자 모양의 건축구조다.


적멸보궁에 대해서야 지난 답사기에서 많은 언급을 했기에 상로전 영역에서는 구룡지에
관한 설을 풀면서 통도사 답사기를 마쳐야겠다.

통도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 창건 설화에는 꼭 심성이 좋지 않은 용이
등장한다. 한편의 소설을 이어 나가보자면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도 민가에서는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의지할 바위, 나무 등을 신앙으로 삼고 기복과 벽사를 기원했을
것이지만 농경사회이기에 물을 가장 중요시 여긴 까닭에 물을 관장하는 용이 신앙의
중심에 있지 않았을까?


불교가 들어온 후에도 부처보다 용 신앙이 강해 그냥 두면 불교 포교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이니 나쁜 용을 몰아내고 그 장소에 사찰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후에 불교가 민간신앙보다 사람들의 믿음에 강하게 자리잡은 다음에 작위적으로 탄생한
설화 속의 용을 달래기 위해 위무책으로 못 등의 용의 놀이터를 조성했다고 보면 나의
억지 논리일까?

2003.07.17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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