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군위군

[스크랩] 군위 / 백죽각(白竹閣)...마누라와 둘이서

임병기(선과) 2008. 6. 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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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달구지로 내려와서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뭄과 동시에 “뭐 하는 거야”라는
마누라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와 재빨리 발아래로 던져 버렸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벗어났고 심증으로 만 짐작하던 마눌에게 물증까지 집혔으니...


금년 초에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하고 사흘도 못 넘겨서 다시 피웠지만 마눌에게는
금연했다고 큰 소리 치며 아직 들통나지 않았었는데 이게 뭔가? 내 꼬락서니가!!!
무섭게 째려보며 순식간에 속사포가 전신에 탄흔을 남기며 날 그로끼로 몰아부친다.
완존히 망가진 몸을 가다듬고 고개를 허리를 90도로 굽혀 “타시죠 어부인!!!”하였더니
“내 근처에도 오지마!!”라며 달구지가 부서질 정도로 문을 쾅 닫는다.


싸늘한 침묵이 짧은 이동거리가 백리길도 더되는 느낌을 받으며 성리 마을의 열여비인
백죽각에 도착해 전세를 만회해보려고 노란 탱자를 따서 코에 가져가도 눈길도 안준다.


백죽각(白竹閣)
풍기 출신의 달성 서씨 부인이 도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으나 28세에 부군과 사별 후
17년 간 후원의 대숲에서 부군을 못 잊고 슬퍼하던 어느 봄날 흰색의 대나무가 3포기
솟아난데서 유래가 된 열녀 정려비각으로 후에 세종대왕이 어제시 2수를 남겼다.
백죽각의 본래 위치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은 비각에 세종의 친필로 인하여
백죽각을 지나는 양반들이 비각 앞에서 말에서 내려 지나가야 한다는 불편 때문이라니
지하에서 세종임금이 얼마나 꽤심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문을 보아야 독해도 못하는 내 눈에 아주 특이한 귀부가 눈에 들어온다.
삼국 통일 후 무열왕릉비에서 당의 영향으로 처음 나타나는 귀부가 세월이 감에 따라
기기한 거북이 되고, 용으로 바뀌셔 거북인지 용인지 모호하게 변화하지만 백죽각
귀부는 정면에서 보면 입과 이빨만 보이고 위에서 내려보아야 얼굴을 볼 수 있으며
얼굴 역시 보름달처럼 둥글며 눈은 실상사 벅수의 눈과 튀어나오는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인다.


어제시를 열심히 옮기고 있는 나를 외면한 채 먼저 비각을 들러 본 마눌에게 “달성
서씨들은 참 양반 가문이지? 가정교육이 잘되어 열녀도 나고...“ 했더니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이제 알았어!!!”라며(우리 마누라도 달성 서씨랍니다. ㅋㅋㅋ) “자기는 혼자
살겠어?“ 랍신다.
그럼요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부정을 하겠나이까!!!


하지만 횡설수설 설(說)을 풀어보면, 조선시대 유교가 모든 사상과 문화를 장악하고
있던 시대에 남편과 사별 후 혼자 살기가 즉 열여가 되기가 엄청 쉽지 않았을까요?
사회분위기가 외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 오히려 어우동 처럼 바람피우기가
훨씬 더 어렵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죽어라 허벅지에 바늘만 찌르며 남편을 그리워서가 아니라 자기 신세타령을
하며 지내오다 보니 열녀가 될 수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도 차마 이 말을 마누라에게 하지 못하고 비각에 새겨진 세종의 어제시만 읊조
렸다.

대를 잡고 울부짖어 눈물 쏫음에
어느 날 밤 흰 대나무가 돋았네
뛰어난 높은 절개 세상사람 다 놀라니
깊고 깊은 궁궐에서 백죽도를 보느니라.

그 옛날 소상강에 맺힌 한 다함이 없어
해마다 대위에 붉은 무늬 보이누나
고금에 변함없는 맑은 절개 알겠나니
한 두 포기 흰 대나무 새로히 돋았네

2003.10.2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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