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군위군

[스크랩] 풍수지리 답사 / 군위 불로리

임병기(선과) 2008. 6. 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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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도 성주와 더불어 소읍에 불과한 군위지만 문화유산만을 두고 본다면 아마 윗자리에 자리매김 할 것이다,
제2 석굴암,한밤 마을,지보사,인각사...,그런 고을이기에 대구 사람이라면 여러번 답사길이 있었겠지만 풍수지리 답사이기에 설레임을 누를길 없다.


후삼국의 치열한 전투로 인해 동네에 청장년이 한 명도 없어 붙여진 대구 불로동의 지명과 달리, 이곳의 지명은 불로장생의 의미가 아닌지 모르겠다. 軍威라는 지명도 후삼국 때 왕건군대의 위세가 당당함에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불로리는 처음이지만 예전에 마누라와 단둘이 군위 답사길에 들렸던 간동 마애여래좌상,열녀비가 있는 백죽각(비석 이수의 단청,세종대왕의 친필로 놓칠 수 없는 답사처임) 건너편에 위치한 마을로 교수님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넓은 들에 비해 마을자리는 협소하며 좌향으로 인해 전망이 좋지 않은 듯 보인다.


불로리는 자리에 비해 주변 산수지세가 빼어나다고 하며 형국은 와우형국, 건너편 산이 건초더미(와우형국인 경북 성주의 동방사지 칠층탑은 소의 고삐를 매는 장소 이며,월항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고개는 건초더미로 알려져 있다)에 해당되며,마을의 경모재가 소의 혀에 자리하고 있다.


행주은씨,김해김씨의 집성촌인 마을은 길지임에도 지기허결처의 비보책으로 마을 입구에 나무로 조산을 꾸몄다고 말씀하신다.하지만 내눈엔 비보 목적보다는 민속에서 중시하는 동수(洞藪) 기능으로 보인다.더구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마을 공동 우물도 바로 옆에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작은 마을임에도 대학교수 8명을 배출하였으며,예전에 부자였던 승지골의 홍판교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오늘 답사 이전에 간동 마애불을 군위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알았는데, 교수님의 답사자료에 의하면,승지곡의 홍부자 집터는 제비집형국이라 부가 넘쳐났으나 찾아오는 시주승,넘쳐나는 손님의 접대를 피하고자 방책을 구했다.


그래서 인각사에 주석하시는 스님의 자문을 구해 제비의 눈에 해당하는 곳에 마애불을 조성 집이 망했다고 한다. 이런류의 설화는 풍수에 자주 등장하며, 적덕,적선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믿거나 말거나 남양 홍씨의 후선들은 마애불이 보이지 않도록 마애불의 반대방향인 영천, 의성등지로 이주하였다고 한다.

"불로리는 자연의 지세에 순응하면서 배수가 양호한 산자락에 터를 잡고,생산의 터전인 들판을 보존한다.마을 주변의 산,강,이산과 저산들은 풍수철학적 차원에서 하나의 범주로 연계되며, 그것은 곧 조산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실천적 환경형태로 이어진다.우리는 불로리의 생활공간에 침전 돼 있는 선조들의 전통적인 셰계관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2005.07.24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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