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군위군

[스크랩] 군위 / 인각사(2)

임병기(선과) 2008. 6. 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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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던 한 시절 자취 없이 가버리고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에라
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하리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인제 알았노라


울도, 담도 바람에 자리를 내준 인각사 문지방의 일연 선사 시비의 글이 나를
붙잡지만 뒹구는 떨어진 잎을 쫓아 마당으로 들어선다.
참으로 큰 가람의 향을 품고 있는 절집이건만 아담하고, 단촐한 전각이 오히려
서글픈 것은 왜일까?


지대석위에 몸돌이 바로 놓여 있는 즉 기단이 사라진 3층탑, 노주석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극락전의 소조 아미타불을 올려보았더니 네모형의 얼굴에 엷은 미소를
지으신다.
좌우협시불 역시 네모형의 얼굴이구만..., 삼존불의 수인도 재미있어 보인다.
오른손은 촉지인이나 왼손은 무릎위에 손가락을 굽혀 위로 손바닥을 향하게 되어있다.


인각사 마당은 유별나다.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노출시킨 자연석 지대석 위에 팔각
연당형에 문비. 사천왕상,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 일연선사의 부도인 보각국사 정조지
탑도 사연 많은 부도다.

부도란 본래 사찰의 서쪽에 위치하며 그 이유는 서방극락세계를 의미하고, 때로는
풍수의 비보책으로 건립된 까닭에 일연선사의 부도도 인각사에서 가까운 동리의
부도골에 위치하였으나 조선조에 덜 떨어진 사이비 선비들이 부도를 훼손하고 그
자리에 자기조상의 묘역을 조성하여 1차 훼손에 이어 일본놈 들이 사리를 절취하기
위해 2차 훼손되어 있던 것을 인각사 경내로 옮긴 것이다.


지난 시절의 상흔을 간직한 채 한가롭게 눈길을 보내는 마모가 심한 석불좌상과 눈빛
주고받으며 일연선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최근에 단장한(기존의 전각주추 위에 건립
한 것이 아니고 본래의 주추는 그대로 두고 규모를 줄여서 중수하여 이채롭다)국사전을
거쳐 전각 속에 고이 모셔진 보각국사의 비를 바라보면 울화가 치밀어 온다.
고려 충렬왕 시절에 죽허대사가 왕희지의 글자를 집자해서 새긴 비문은 물론 비신도
엉망진창으로 훼손 되어있었다.


유쾌한 기분이 아니어서 저 멀리 보이는 2층 누각 형태에 윗층에 작은 문이 달린 산신각
을 눈으로만 담고 마당으로 나와서 석불과 부도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마누라가
옷소매를 당기건만 무너질 듯 보이는 강설루 지붕에 피어난 야생화가 자꾸만 발길을
잡아 떠남이 쉽지 않았다.
2003.10.2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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