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스크랩] 예천 / 동본동, 남본동의 보물

임병기(선과) 2008. 6. 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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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는 험상궂기보다는 천진스런 시왕이 모셔져 있는 명부전을 제외하고는 온전한 
당우가 하나 없고 불사를 완료했거나 불사중이라서 발 밑을 보며 걷지 않고서는 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다. 
진천의 보탑사와 더불어 귀한 대장전의 윤장대와- 중국 양나라의 선혜대사가 처음 만든 
경전을 내부에 보관한 것으로 글자를 모르는 중생을 위해, 輪藏(윤장)을 돌리며 부처의 
진리에 접근하고 공덕을 짓는 것이라는 믿음, 윤장대 내부의 경전은 진리의 깨달음을 
상징- 목각탱도 어디에 보관하는지 알 수 없어 스님께 여쭈었더니 "볼 수 없어요" 
퉁명스런 답만 던져 주곤 사라져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입구를 나오며 한마디 내뱉었다. 
불사가 끝나면 틀림없이 입장료를 징수할 거야!!! 
왔던 길을 되돌아 예천읍내 한천 방천길 옆 둑과 인가에 둘러싸여 갑갑해 보이는 터에 
동본리 석조여래입상과 신라 말의 삼층석탑이 당당하게 서있다.


*예천 동본리 석불




입상은 통돌을 가공한 탓에 왼쪽 손이 어색하나 힘있는 웃음, 풍만한 몸매, 목도리를 두른 듯한 모습, 대좌의 복련이 뚜렷하며 삼층석탑은 특이하게도 옥개석 받침이 5,5,3 이라 삼층 옥개석이 본디의 것일까라는 의문도 들고, 2기단인지 1기단인지 구분이 모호한 하기단은 상기단 보다 좁아 불안해 보이지만 상기단의 사천왕상이 역동적으로 돋을 새김되어 있고 상륜부에도 노반 복발이 남아있다.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
무엇보다도 야릇한 매력을 끄는 것은 입상과 탑의 배치다. 즉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석조입상은 조성 시부터 전각 없이 야외에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겠으나 탑이 석조여래와 일직선상이 아니라 좌측으로 비켜나 있어 한천사와 마찬가지로 예천읍의 풍수지리에 허한 부분을 비보하기 위한 비보탑으로 추측해도 큰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천 남본리 개심사지 오층석탑
동본리에서 남본리로 가면서 맘을 활짝 열고, 마음을 텅 비우고 開心寺(개심사) 절터에 이르면 논 가운데 잘생긴 탑이 미소를 머금으며 두 팔 벌린다. 첫눈에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멀리서도 기단, 탑신에 너무도 또렷하게 새겨진 사천왕상을 비롯 異形(이형) 석탑의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탑 상륜부에서 발견된 조성시기가 고려초인 1010년이라는 명문이 아니라도 1층 몸돌 받이에 판석이 끼워져 있어 고려의 탑임을 알 수 있지만 우리나라 이형석탑을 대표하는 불국사 다보탑이래 신라하대 선종 도입과 더불어 나타나는 이형석탑 중에는 실상사 백장암 탑이 미려함에 으뜸이라는 느낌이 무색할 정도로 개심사지 5층탑도 눈을 즐겁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60년대 미스 코리아 같은 신라의 삼층탑( 미스 신라)이 오늘날 미스 코리아 처럼 쭉쭉빵빵한 팔등신 고려의 5층탑(미스 고려)보다 더 정감이 있었는데 개심사지 5층 탑으로 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석탑하부기단에 새겨진 십이 지신상

*상층기단에 새겨진 조각상
혼자 답사라면 여기서 머물고 말았을 것이다.. 길게 누운 탑의 실루엩을 즐기며, 하늘하늘한 잠자리 날개 같은 잠옷을 입은 미스 고려도 상상해보고, 개구리 울음 벗삼아 탑 위에 걸친 별도 헤어보고, 교교한 달빛아래 탑돌이 나선 1000년 전 예천 규수의 넉넉한 맘도 그리면서 날밤을 세우고 싶은 곳이기에... 가엾은 중생! 마음을 비우라는 개심사의 가르침도 망각하고 지금 무슨 죄를 범하고 있는가? 2003.06.07
사진 상감마마
http://cafe.daum.net/moonhawje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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