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스크랩] 안동 / 토계를 지나 육사 생가에서

임병기(선과) 2008. 6. 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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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접어들면서 갈등이 생긴다.
다리를 건너 안동향교, 내앞 마을의 의성 김씨 종택, 지례 예술촌을 들릴까?
아님 백화정이 보이는 임하 보조댐의 솔 숲에서 낚시대나 드리우고 시간이나 낚을까?


갈등도 잠시 달구지는 예안 길로 접어든다.
번잡함이 없는 한적한 길이었던 이 길도 이제는 맛이 사라졌지만 퇴계의 흔적을
뒤적인다는 즐거움에 엑세레이트에 힘이 더한다.


오천리 광산 김씨 유허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최고 양반 가문을 거론할 때 회자되는 "광김,연이"의 고택
(광김연이는 광산 김씨, 연안 이씨를 말하며, 홍문관의 우두머리인 대제학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집안이라는 데서 연유한다.)에 기대감을 가지고 들렸지만 고택의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물론 안동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의 고택을 옮겨 온 까닭도 있겠지만 부분으로 보는
느낌으로 전체를 알 수 없고, 조화로운 반가의 가옥 배치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기에
별당과 정자 등 건축의 부분은 건축학도 들의 관심 영역일 수밖에......

보수와 중수가 꼭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곳에서 해야할 곳은 버려두고
그대로 두어야 할 곳은 화려하게 단장하는 현실이니, 언제쯤 예산 타령이 끝나 이
곳에서도 반듯한 반가의 온전한 양택 배치와 주자학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런지...


지금쯤 예산 수덕사 인근의 고건축 박물관은 완공이 되었을까?
경산 영남대 캠퍼스의 까치구멍 집은 건재할까?
갑자기 그 곳에 가고 싶어진다. 제천의 청풍문화재 단지에도....


달리는 달구지 속에서 슬쩍 상감님께 물었다
도산서원 건너뛸까요? 주저함 없이 그러하잖다. 너무 자주 들렸다는 공감대 외에도
퇴계종택, 육사 생가를 답사하고 봉화를 꿈꾸어야 하기에....


퇴계의 호가 종택 앞 토계천에서 가져왔다는 말을 떠올리며 종택을 찾았건만 보수로
널부러진 종가는 황량하기 그지없고 안채 대청 위에 어느 님이 두고 간 쾌유를 빈다
라는 글이 있는 난 화분이 가슴 아려 차라리 산넘어 도산서원이 없었다면 종택이
이렇지는 않았겠지라는 맘을 버리지 못하고 토계천을 건너서 육사 생가 길로 방향을
잡았건만 눈앞에 놓인 산길에 방향감각이 없어진다.


저 산너머에 무어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지나가는 트럭을 세웠더니 방향이 맞단다.
야트막한 비포장 산길에 올라서니 산 아래에 기왓집이 보인다.
이거야 원 우리 나라의 십승지(풍수 지리적으로 좋은 양택의 의미가 아니라 전란을
피하기 좋다는 장소를 말하며 지리산 청학동이 대표적인 十勝地십승지의 한 곳이다.)
도 아니건만 이런 곳에 동네가 있다니, 시비를 옆에 두고 상감과 나는 기왓집을
기웃거리며 대문을 열려다 사람 없는 집이라 고택의 현판만 보다 시비로 다가 섰다.


시문학(?)의 동인이면서도 서포트라이트를 받고 생가에는 모란으로 단장한 강진의
영랑 생가는 번잡했고, 납북되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세인의 관심에서 사라졌던
옥천의 지용 생가는 내국인은 보이지 않고 파란눈의 외국인의 발걸음이 나를
슬프게 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는데, 육사 생가는 흔적조차 없고 토끼풀 깔린
터에 시비만 서있다.


지용도 족쇄(?)에서 해금되어 이제 지용제가 성황리에 개최되고, 청록파 시인의
청록도 그들의 스승인 지용의 호 "백록"에서 연유한다는 기분 좋은 사실이 세인들에게
알려졌으며 향수의 노랫말에 곡이 붙여져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고 있건만 육사의
생가는 언제쯤 복원되고 청포도 곡조를 읊조릴 수 있을까?


고교 시절 국어 샘이 육사의 호는 죄수번호 264번의 육사에서 가져왔다며 눈을 감고
낭송하시던 모습을 되새기며, 혼자서 시를 읽어 내려가며, 광대뼈가 튀어나온 검은
안경테의 육사를 그려본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여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흠뻑 적셔도 좋으련만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렴

2003.05.1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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