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스크랩] 안동 / 제비원 석불

임병기(선과) 2008. 6. 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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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원 석불을 찿아 갔던 첫 답사 길을 난 아직 잊지 못한다.
79년 군입대를 앞두고 휴학 기간중에 버스를 타고 가서 비를 맞으며 곁에 두고도 찾지
못해 맴돌다 친견한 석불의 미소, 나의 몸에 흐르는 땀과 비에 젖은 옷과 똑같이 석불
위에도 빗물이 땀처럼 두 볼에 흘러내리고 습의도 비에 젖어 있던 모습을...


이 길을 수차례 통과만 하였다는 상감님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 촬영에 바쁘지만
난 내소사, 율곡사 등 사찰에 전해내려 오는 설화를 떠올리며 제비원의 연이 아가씨를
그리며 참으로 미남인 석불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院원 이란 지명은 예전에 교통요지에 있던 오늘날의 여관으로서 장호원, 조치원 등도
같은 의미이며 제비원은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 조령, 죽령을 넘기 전 하루
머문 곳이다.

제비원 석불과 관련으로 신라말 도선의 작품, 이여송의 난동으로 핏자국이 선명했다는
이야기 등도 흥미롭지만 고려를 개국한 태조가 황실의 권위와 정복지역의 백성을 위무
하기 위해 조성된 거대석불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보며(물론 관촉사, 용미리 석불과
같이 왕건이 백성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관음보살로 조성 했지만 지역의 주민들은
옛왕조를 그리며 미륵이 하생하기를 염원하는 미륵불로 받아들여 은진미륵은 관음보살
이 분명하지만 미륵불로 불려진다), 제비원 석불은 분명 중품하생(?) 수인을 하고 있어
미륵불로 보인다.


하지만 제비원 석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민속에서 제비원을 성주(민속에서 집집
마다 그 집의 부귀영화 평화를 지켜주는 신, 즉 집 지킴이)의 본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번 답사기에서도 석불보다 성주의 본향을 왜? 제비원이라 할까? 라는 부제로 글을
쓸려고 일요일에 대구시립남부도서관을 뒤져도 예전에 읽었었던 안동대학교 임재해
교수의 글을 찾지 못하다가 교수님의 홈 페이지에서 자료를 발견하여 기쁨을 가눌 길
없었지만 그 분의 글을 발췌하여 답사기를 쓰는 것은 글의 맛과 의미가 반감될까 두려워
임재해 교수님의 글을 모두 가져왔다.

사라져 가는, 잊혀진 우리 민속에서 성주의 의미를 되새김질 해보시길 빌면서...


안동대학교 임재해 교수님이 월간 <<샘터>> 11월호(샘터사, 2002)에 기고한 글입니다.


우리 민족 신앙의 본향은 어디일까?

종교 없는 민족도 있을까? 별난 민족이 아니면 모두 종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질문이다. 종교는 인류 문화의 보편성을 갖춘 문화 현상인 동시에 인간과 자연 또는 인간과 신 사이의 의사소통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과 소통하기 위해 언어 행위를 하는 것처럼, 인간이 자연 또는 신과 소통하기 위하여 종교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에서는 예사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를 믿고 정신적으로 의지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인간의 결함이 신앙을 만들어내고 종교 문화를 형성하는 셈이다. 인간이 신처럼 완전하다면 굳이 종교를 만들어낼 까닭이 없으며, 비록 불완전한 존재라도 예사 동물처럼 지적 사고력과 상상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종교와 같은 정신문화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만이 누리는 문화로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문화적 장치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하는 문화적 장치로서 종교는 무엇이 있을까.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를 지닐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고유의 신앙이라 할 수 있는 ‘무속(巫俗)’ 또는 ‘무교(巫敎)’를 들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건국 시조인 단군이 바로 나라 굿을 수행한 국무로서 큰무당이자 정치적 군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전통은 신라 남해왕대까지 수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굿 또는 무교를 우리 민족 종교로 인정하고 그렇게 대답한다고 하더라도 그 본향(本鄕, 메카)이 어디냐 하고 다시 물으면 얼른 대답하기 어렵다.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이나 불교의 성지 보드가야처럼 무교의 성지를 어디라고 제시할 만한 민족 종교의 성지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의 범위를 민속 신앙으로 넓혀 생각하면 성지를 찾을 수 있다. 굿은 학자에 따라 시베리아 샤먼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인식되거나, 세계적으로 두루 나타나는 샤머니즘 신앙을 통해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민속 신앙 가운데서도 성주와 삼신 신앙은 우리 민족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널린 섬긴 역사적 전통과 함께 한반도 전역에 두루 전승되고 있어 민속 신앙인 동시에 우리 민족 신앙으로서 성격과 자질을 잘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성주신은 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으로서 조왕, 삼신, 터주 등 다른 집안 신들과 달리 대표성을 띠고 있다.


성주신은 집을 새로 지었거나 이사를 하였거나 또는 집안에 병자가 있어 재액이 생길 때 모시게 된다. 시월 상달에 농사를 지어 추수가 끝난 다음 햇곡으로 떡을 하고 무당을 불러 집안의 복을 비는 굿을 할 때 성주를 모시는데, 이때 가장의 생기, 복‧덕일을 가려 가족의 건강과 뜻한 바가 순조롭게 성취되기를 빈다. 이를 성주굿이라 한다. 이와 같이 성주를 매는 굿을 할 때는 3일 전 대문에 외로 꼰 새끼줄에 흰 종이와 소나무 가지를 꼽은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펴서 부정한 사람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온 가족이 정성을 들여 고사를 지낸다. 이때 대추, 밤, 곶감 등 색실과 정화수 그리고 떡은 백설기와 시루체떡을 만들어 안택이 끝난 다음 이웃과 고루 나누어 먹는다.


이러한 성주 신앙의 본향은 경상북도 안동의 ‘제비원(고려시대부터 역원제도에 따라 원(院)이 있던 곳, 현재 안동시 이천동)’으로 상당히 구체화되어 있다. 안동 제비원이 바로 성주 신앙의 메카이자 우리 민족 종교의 성지인 것이다.

‘성주 본향이 어데메냐 /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가 본일러라 / 제비원에 솔씨 받아’
- 안동 지역 ‘성주풀이’ 부분

성주풀이는 성주굿을 할 때 무당이 부르는 일종의 무가이다. 다른 무가처럼 성주 무가라 하지 않고 ‘성주풀이’라 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성주풀이는 성주 신앙에 관계되는 ‘풀이’ 형식의 노래라는 뜻이자 집안에 성주신을 모시거나 성주에게 치성을 드릴 때 부르는 민요이기 때문이다. 풀이 형식의 노래는 본풀이 형식과 뒤풀이 형식이 있는데 본풀이는 사실상 신화의 순우리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주풀이는 성주 신화에 해당되는 노래이다. 성주 치성이나 성주굿에서 부르는 성주풀이는 무당과 치성을 드리는 사람에 의해 신성시되는 믿음 속에서 노래된다. 그것은 마치 단군신화가 고조선 건국의 신성성을 얘기하고, 주몽신화가 고구려 건국의 신성성을 보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고대 국가의 역사 서술이 건국 신화에서 시작되듯이 성주 신앙의 역사도 성주 신화(성주풀이)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주풀이에서 성주의 본향이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단군신화를 통해서 고조선의 건국을 이해하고 단군의 후예임을 인식하는 것처럼, 성주풀이를 통해서 성주신의 출현과 성주 신앙의 시작, 그리고 집안에서 섬기는 성주신의 정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도 막연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시‧군과, 마을의 취락에 해당되는 모듬살이의 지명을 차례로 노래하여 합리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라 하는 지점은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현재 지도상에 분명히 점을 찍을 수 있는, 실존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성주 신앙의 성지로서 안동을 주목하는 근거는 안동 지역에서 전승되는 성주풀이에서만 성주의 본향이 안동 제비원이라고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한반도 전역에서 성주풀이를 할 때 안동을 성주의 본향으로 노래한다는 사실이다.

‘성주나 본(本)이 어드매냐 /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나원이 본일넨데 / 제비원이다 솔씰 받아 / 서평 내평에 던졌더니 / 그 솔이 싹이 나…’ -해주 지역 ‘성주굿’ 부분
‘성주 본향 본을 풀면 게 어디가 본이신고 / 안동주 천제비원에 할나산이 보이신가 / 할나산에 들으스니 대부동이 서 있난데…’ -서울 지역 ‘황제풀이’ 부분
‘성주로다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맨고 / 경상도 안동땅에 제비원에 파른 솔씨는/ 물안에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나야…’ -목포 지역 ’성주굿‘ 부분
‘성주 근본이 게 워딘가 /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의 솔씨받아’ -광양 지역 씨끔굿 ‘성주’ 부분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성주굿 무가에서 성주의 근본을 물으면 한결같이 안동 제비원이 본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민속 신앙의 하나인 성주 신앙을 민족 신앙으로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 누가 우리 고유의 민족 신앙에 관해서 질문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면, 성주 신앙을 보기로 들어서 이것이 우리의 민족 신앙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깊어가는 가을날, 서늘한 바람 한 줄기 벗 삼아 형형색색 물들어가는 단풍 길을 따라 우리 민족 신앙의 본향인 안동 제비원으로 성지 순례를 떠나보기를 권한다.

2003.05.1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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