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안동시

[스크랩] 안동 / 학봉 종택(5)

임병기(선과) 2008. 6. 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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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의 노기가 지속되면 말씀이 끝날까 두려워 슬쩍 거들었다
-. 어르신 그래도 용(자)환(자) 어르신의 명예가 회복되지 않았습니까?
-.(표정이 풀리시며) 그 어른이 말이야 13(?)세 때 선친이 왜놈에게 수모를 당한 것을
눈으로 목격했거든, 얼마나 한이 맺혔겠어, 그러니 죽으면서도 한마디 말도 없이 가셨어.
그러니 그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누가 알겠나? 우리도 몰랐었는데 도움을 받은 지사들이
보훈처에 탄원을 해서 그렇게 된 거지 아마 1995년도인가...


그렇다. 천하의 파락호로 알려졌던 김용환은 거의 모든 재산을 독립군 군자금으로 보낸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모르게 하려고 난봉질, 노름꾼으로 생활하셨지만 그분의 깊은 속은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종친들에게 군자금을 모금했다며 감히 누구가 동참을 할 수 있었겠는가. 대대로 내려오는 전답을 팔고 학봉의 유물을 처분하고 이러한
모든 것이 군자금을 만들기 위한 묘책이었던 것이다.
경우야 다르지만 대원군 이하응이 안동 김문 들에게 비굴하게 미치광이 노릇을 했듯이...
1995년 정부는 김용환 어른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그분의 명예를 회복해주었다.


-. 어르신 학봉 선생의 명예도 회복되지 않았습니까? 저희들이 국사시간에 배웠던 것이 모두 사실과 다르지 않습니까?
-.(얼굴에 기분 좋은 표정이 역력하다) 조선왕조실록 읽어봤어요! 실록에 나와 있는 것도 제대로 해석 못했으니... 학봉 할배가 언제 왜놈들이 안쳐들어 온다고 한마디나 했어?
-. 그게 다 백성들이 공포심을 가지고 생활을 못할까봐 깊은 애민사상의 발로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 왕조는 전운이 감돌자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일본에 파견했다. 이들이 귀국 보고를 하면서 황윤길은 전운이 임박했다고 말하고 김성일은 걱정할 일이 못 된다고 보고하였다. 결국 김성일의 잘못된 보고가 전란을 일으켰다고 학봉을 역적이라는 것이 종래 교과서의 일관된 논조였다.

이것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선조(수정)실록과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의하면 풍신수길의
무례한 행동에 분개하여 3일을 기다린 후 국서를 받아낸 분이 학봉이며 귀국보고 후 서애 유성룡이 김성일에게 "그대가 황윤길과 다르게 말하는데 만약 병화가 있게되면 어찌할려고 그러나?" 하고 물으니 "저도 어찌 왜적이 쳐들어 오지 않는다고 단정하여 말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놀라고 의혹할까봐 두려워 그것을 풀어주려고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의 보고는 진심이 아니었다. 국가정책에서 정직하게 보고하지 않는 것은 문제였지만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바랐든 것은 민심의 안정이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견해를 최종적으로 판단했어야 할 선조의 무능함이 어쩌면 더 큰 책임인지도 모르다. / 신복룡 교수. 동아일보]

-.순직한 진주성에는 사당이 없습니까?
-.없어. 처음에는 선조가 학봉을 옥에 가두었지만 진심을 알고 왜병을 막는데 힘쓰도록 했어 그러다 결국 진주성에서 돌아가셨지(다른 이야기도 많았는데 기억의 한계로 상술하지 못함이 아쉽다. 대마도, 풍신수길, 유성룡 등에 관해 말씀이 있었지만 말씀을 기록한 작은 수첩을 그날 분실하여서...)
-.운장각 구경 해볼래요? 하시더니 사랑채로 가셔서 열쇠 꾸러미를 들고 오신다.
(雲章閣운장각은 시경의 한 구절로 '저 높은 은하수처럼 하늘 가운데서 맑게 빛난다' 라는의미며 학봉의 유품과 고문서 등을 보관한 전각이다)


운장각의 8개의 열쇠를 여는 동안 슬쩍 학봉 선생님은 대쪽이셨죠 라고 여쭈었더니
-.그렇지 선조 임금이 경연장에서 자신을 옛날 왕에 비교하라 하자 모두들 '요순 같은 성군이라' 했어나 학봉은 '천자가 고명하니 요순 되기가 어렵지 않으나 신하가 옳게 간하는 말을 거부하는 폐단이 있으니 걸부 같이 나라를 망칠 수도 있다" 라고 했었지.


운장각은 온 통 고서의 천지로 목판은 물론 임란 시 학봉이 사용했던 칼 등의 유품이 가득하다. 겨우 알 수 있는 것은 주자의 무이구곡 그림 한 점 정도 밖에 없다. 옛님들의 자취를
느낄 수 없으니 참으로 한심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종손 어르신이 슬며시 책 한 권을 건네신다.
고마웁다, 최소한 쌍놈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의미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서를 팔아 넘기지만 않았어도 달성의 남평 문씨들 보다 많았을텐데...라며 입 속으로 말씀하신다.
'어르신 아무리 접빈객이라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오면 번거롭지요' 라고 시건방진 질문을 하였더니 '그라만 안되지....' 하시더니 조금 뜸을 들이신 후 '소란스러워서 성가셔'라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의 답사문화에 대해서 시사한 바가 큰 말씀이시다. .


상감님이 큰 발견을 한 듯이 어 한글이네요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시인 어른으로부터 받은 책에 의하면 한글 편지는 학봉선생이 임란이 일어난 1592년 경상우도 감사로 산청에 계실 때 안동본가의 정부인 권씨에게 보낸 서찰로 진중에서 최후로 부인에게 보낸 비장한 내용의 편지다

"요사이 추위에 모두들 어찌 계신지 가장 사념하네.
나는 산음 고을에 와서 몸은 무사히 있으나, 봄이 이르르면 도적이 대항할 것이니 어찌할 줄 모르겠네. 또 직산 있던 옷은 다 왔으니 추워하고 있는가 염려하오.
장모 뫼시옵고 설 잘 쇠시오. 자식들에게 편지 쓰지 못하였네. 잘 들 있으라 하오.
감사라 하여도 음식 가까스로 먹고 다니니 아무 것도 보내지 못하오.
살아서 서로 다시 보면 그때나 나을지 모르지만 기필 못하네.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끝없이 이만 섣달 스무나흗 날"

운장각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양반, 종손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이 무엇일까?.
이 종택은 앞으로 누가 보존하고 지킬 것인지?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지고 역사의 장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종택 솟을문을 나서면서도 내내 사라지지 않는 상념으로 머리는 복잡하건만 긴장이 가신
다리는 갈지字 행보다.

金時(자)寅(자) 어르신 내내 건강 하소서....

2003.05.1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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