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573

곡성...석곡리 석불입상

2008년 우리 카페. 유현. 포비랑 뵈었던 님입니다. 축대를 쌓은 것 같으며, 진입로가 석불 정면으로 기억되는데, 측면입니다. 2008년 글 https://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dRVf&fldid=DjZP&contentval=000Dk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852&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LrpNuZSucOsx.YncUoV2ej_tRpHqkOL1hFNwnK7pMwx2pUU9oYvq-CADq-lzJK_p_TYbLZznvSbg3qy8mowcMPv8ZrH3.rqFy3398qiTWLIUHiG1zWYsDiM8bZzuN-Hg6ikHx5NE_e7XqRBYsK1wrdarSJf..

순천...옥천서원. 사직단. 임청대

임청대길 18 옥천서원. 사직단. 임청대가 한 구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옥천서원(玉川書院) 사진은 내삼문, 옥천사. 묘정비입니다.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옥천서원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金宗直)일파로 연루된 김굉필이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다가 순천에 이배 되어 죽자, 그 학덕을 기려 1564년(명종 19) 순천부사 이정(李禎)이 처음 창건하여 ‘경현당’이라 하였다. 1565년(명종 20) 김굉필의 신위를 모실 사당을 지으면서 ‘옥천정사(玉川精舍)’라 하였는데, 1568년(선조 1) 순천부사 김계(金啓)의 상소에 의하여 전라도에서는 처음으로 ‘옥천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그 뒤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1604년, 1653년, 171..

보성...마천석교비

마천석교비(寶城 磨川石橋碑) 옛 나루터 마천(磨川, 득량면 해평리 일원)에 1674년(현종 15) 7월 완공한 돌다리의 건립을 기념한 비석입니다. 2015년 불교문화재연구소의 개흥사지 발굴 과정에서 득량천 해평교 옆에서 동강 난 채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접합하여 득량면 사무소로 옮겼습니다. 마천석교비 개흥사 계수 스님의 주도로 13인의 석수와 173인의 시주로 1674년에 세운 마천석교에 관한 내력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오봉산 개흥사지 https://blog.daum.net/12977705/8726102?category=5201 개흥사 벅수(장승) https://blog.daum.net/12977705/8722988?category=5201 마천석교비에 관한 글을 다음 블로그 향토학의 향토학인(김희태) 님..

보성...동원 석량비

동원석량비(寶城 東院石梁碑) 동원(東院) 앞 하천에 1686년 윤 4월에 설치한 돌다리의 건립을 기념한 비석입니다 개흥사 계수스님이 1685년 정월 초 발원, 지역민 시주와 군수 박립의 도움을 받아 오봉산의 돌을 사용하여 완공하였다고 합니다 계수 스님 "계수(戒修) 스님은 성이 강씨(姜氏)라는 것만 알려져 있고, 자세한 출신이나 수학 과정 등을 알려져 있지 않다. 1651년에 개흥사에서 간행된 간기와 1680년의 개흥사 향로전 관음보살좌상 조성 발원문에 각기 시주(施主)와 사중(寺衆)으로 등장하고 있다. 향로전 보살상은 색난(色難)의 작품으로 지금은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있다. 1649년에 간행된 과 1662년에 간행된 에 시주(施主)로 기록된 계수(戒守) 역시 동일인물로 보인다. 계수 스님은 1640년대..

보성...보성 향교

보성향교 2014년에 이어 다시 들렸습니다 보성 향교 https://blog.daum.net/12977705/8724419?category=5201 하마비 귀부와 이수를 갖추었습니다 익살스럽습니다 작은 발이 앙증 맞고... 전면 비머리 기사 자월 개건(己巳 子月 改建) 기사년 음력 11월에 다시 세웠습니다. 기사년이 언제인지 불분명하지만 1602년 이곳으로 이건하여 다시 고쳤다는 1839년 이후의 기사년인 1869년으로 추정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며 근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귀부 측면 작은 발, 꼬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수 후면 외삼문 명륜당 동, 서재 외삼문과 명륜당 사이에 동, 서재가 배치되지 않고, 명륜당과 내삼문 사이에 자리합니다. 동재 서재 명륜당 후면 내삼문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도 문이 닫혀..

보성...계산리 삼층석탑

옛글(2009년)에는 무척 힘들게 찾았던 것으로 기술하였습니다. https://blog.daum.net/12977705/8722983?category=5201 2층 기단의 삼층석탑 상륜부가 망실된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탑입니다. 탱주 1주, 우주가 모각된 하층 기단 이하는 망실되었으며, 평박한 갑석은 4매로 결구하였습니다. 상층 기단 중석, 기둥과 면석을 각각 별석으로 세웠습니다. 우주에 배흘림이 보인다고 여러 자료에 실려있지만 분명하지 않습니다 기단 갑석은 평박하며, 부연을 깊게 새겼습니다. 상층 기단 갑석 상부에는 각호의 2단 탑신굄이 조출되었습니다 우주가 모각된 탑신석은, 우리 눈에 익숙한 체감률보다 높아 5층 탑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전층 4단이며, 절수구를 얕게 새겼습니다...

보성...옥마리 오층석탑

2009년 이후 다시 찾았습니다. 문루는 전혀 기억에 없고... 옥마리 오층석탑(2009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2982?category=5201 이층기단.오층석탑 상, 하층 기단 중석의 탱주 1주. 우주 평박한 하층기단 갑석 상층기단 중석의 탱주, 우주 갑석 하부의 부연, 갑석에는 물매가 거의 없고, 2단 탑신굄 조출 전층 탑신석, 우주 모각 옥개석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상하 전각의 반전이 있으며, 1~2층 5단 층급 받참. 3층 4단 층급 받침, 4~5층 3단 층급받침을 새겼고, 절수구가 있습니다 2021.09.04

장흥...회령진성

회령포진성(會寧鎭城) 회령진성(會寧鎭城)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축조된 만호진성(萬戶鎭城)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水軍鎭)입니다. 마을 뒷산에 축성하였으며 현재는 연륙되어 있는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대・소대구도 등의 섬들이 외호(外護)하고 있으며, 남아 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라고 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회령포진은 전라좌도도만호진(全羅左道都萬戶鎭)인 여도 관하에 내예, 돌산, 축두, 녹도, 마두, 달량, 어란 등과 함께 만호가 배치되어 중선 4척, 별선 4척군 472명, 뱃사공 4명이 주둔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방어와 수색을 위하여 수군첨절제사나 수군만호들은 항상 병선을 이끌고 해상을 왕래하였고 병선이 머무르는 곳으로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