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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제주

제주...김만덕 묘비

by 임병기(선과) 2024.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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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라면.

탤런트 고두심이 열연한 티비 드라마 김만덕이 익숙할 것입니다

나만 그런가?

김만덕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76304

行首內醫女金萬德之墓. 1812년

“김만덕의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탐라 양가(良家)의 딸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영락하여 의지가지없이 가난하여 고생하였다. 자라서는 살결이 곱고 아름다워 교방에 몸을 의탁하였는데, 옷을 동여매고 식비를 줄여서 재산을 크게 불렸다. 1795년(정조 19)에 도민이 크게 굶주리자 재산을 다 내어 놓아 육지에서 곡식을 사들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였다. 제주목사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니, 왕께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소원은 서울의 번화함과 금강산의 명승을 보는 것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정조는 특별히 명하여 역로에 있는 각 고을에서 차례로 음식물을 공급케 하였고 내의녀로 삼아 은총을 베풀었다. 자주 역마[驛馬, 傳馬]를 지급케 하여 금강산 1만 2천봉을 두루 유람할 수 있었다. 제주로 돌아갈 때에는 대부(大夫)들이 모두 전별의 글로 전기(傳記)를 지어 주었다.

비록 옛날의 현명한 여자라 하더라도 아직 이런 일은 없었다. 칠순에도 얼굴과 머리가 신선과 부처를 방불케 하였고 두 개의 눈동자가 빛나고 맑았다. 다만 하늘이 무심하여 아깝게도 자식이 없었으나 양손(養孫) 김시채(金時采)를 후계로 삼았다. 김만덕의 동기(同氣)들도 능히 생전의 뜻을 준수하여 영원히 향불을 받들었는데, 또다시 무엇을 한하랴.

원릉(元陵)[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 1739년(영조 15)에 태어나고 1812년(순조 12) 10월 22일에 임종하니, 다음 달에 병원지(竝園旨)에 장사 지내었다. 1812년 11월 21일 세움”[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恩光衍世(은광연세)
은혜의 빛이 온 세상에 뻗어나간다.
1840년. 제주에 유배 온 추사가 만덕의 양손에게 써주었다고 합니다.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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