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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강진군

강진...양건당 애마지총

by 임병기(선과)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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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당 애마지총(兩蹇堂愛馬之塚)

작천면 구상길 43. 척동마을 입구 들녘에 있습니다

 

양건당(兩蹇堂) 황대중(黃大中, 1551~1597)

"양정공 황사효(黃事孝)의 증손이며, 황윤정(黃允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효건(孝蹇)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성장해서는 참봉에 천거되었다.

임진왜란 때 장사로 뽑혀 전투에 참여했으며, 병사 황진(黃進, 1550~1593)을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가했다.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성이 함락될 때 성을 빠져나온 그는 삼도 수군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활약했다. 이순신의 진중에서 활약하던 중 일본군의 총탄이 오른쪽 다리를 관통하여 다리 일부를 절개했다. 그는 1597년 8월 16일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과 더불어 남원읍성을 사수하다가 전사했다.

그는 원래 모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왼쪽 허벅다리 살을 베어 약으로 쓴 이후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러나 1594년 거제도 싸움에서 오른쪽 다리마저 중상을 입어 양다리를 절룩거리게 됐다. 이순신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다리는 효건(孝蹇), 지금의 다리는 충건(忠蹇), 두 다리를 함께 절룩거리니 양건(兩蹇)이로다” 그때부터 그의 호는 양건당(兩蹇堂)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다음 백과. 강진일보에서 발췌 및 정리)

 

구상마을에  1795년(정조 19)에 충효 정려각 건립되었습니다.

 

양건당 애마지총((兩蹇堂愛馬之塚))

황대중 장군에게는 젊은 시절 우연히 집으로 찾아들어온 말이 있었는데 훗날 많은 전투현장을 함께 누빈 애마가 되었습니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남원성 전투에서 장군이 전사하자 눈물을 흘리며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지켜보던 김완(金完) 장군이 시신을 수습하여 등에 태우자 말은 300리를 달려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이 장군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장례 3일 후 말이  숨을 거두자 후손들이  말무덤을 만들어 지금껏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동물 무덤

https://blog.daum.net/12977705/8726933

 

애국(愛國)

충(忠)

효(孝)

 

가을입니다.

 

202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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