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진주시

진주...충노 최의남 정려 현판

임병기(선과) 2021. 8. 5.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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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각

동산리 용고미(龍顧尾)마을 입구

 

 

용고미((龍顧尾))

풍수의 회룡고조(回龍顧祖) 형국에서 유래된 부락일까요?

맞다면

뒷산 봉우리가 머리를 돌린 용이며, 꼬리 부분에 마을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형국의 양택에서는 충신과 효자가 배출된다고 했는데...

 

정려각

 

충노 효자 최의남지려(忠奴孝子崔義男之閭)

안내문에 의하면 최의남은 함양 박씨 집안의 사노(私奴)이었으며, 모시던 주인 내외가 일찍 죽자 남은 아들을 양육하여 박씨 가문의 대를 잇게 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모를 지극히 모셨다고 합니다.

 

주인에게 忠誠하고, 부모에게 孝를 다하여 숙종 13년(1686년) 병인 11월에 내린 정려입니다

 

숙묘조 십삼년 병인십일월 명정(肅廟朝 十三年 丙寅 十一月 命旌)

1686년

 

충노 효자 최의남지비(忠奴孝子崔義男之碑)

임신 십일월 립(壬申 十一月 日立)

세운 주체는 새기지 않았으나 함양 박씨 문중으로 생각됩니다

정려가 1686년 병인(丙寅) 임을 감안하면 , 그 이후 임신(壬申)년은 1692년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의 충노비

http://blog.daum.net/12977705/8727148

 

 

 

충효(忠孝)

조선시대에 사노(私奴)에게 정려를 그것도 충과 효를 동시에 내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불평등한 신분 제도에서 사노(私奴) 관리 방편의 하나'라는 비딱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변치 않으니...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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