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진주시

진주...허추 부부 묘 석조물

임병기(선과) 2021. 8. 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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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추 부부 묘

뒤편이 허추의 묘, 앞이 부인 진양 강씨의 무덤입니다.

 

조선 전기에 조성된 묘역으로 묘비 2기. 상석 2기. 망주석 3기. 향로석 2기가 경남 유형문화재(제 623)으로 지정되었으며, 석물에 조식된 문양은 국조오례의에도 실리지 않은 화려한 장식입니다. 또한 명문가의 딸인 부인 묘의 석물이 지아비 묘역보다 더욱 화려하게 갖추어진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양 강씨 묘역

이조판서를 지낸 姜叔卿(1428~1481)의 딸(1460~1525)입니다.

강숙경의 형이 영의정 강맹경이며, 자료를 검색하여보면 선대에서 왕손의 딸과 결혼한 명문가 집안입니다.

 

묘역

봉분. 상석.향로석. 묘비. 망주석이 있습니다.

 

향로석

 

상석

상석의 다리. 감실. 덩굴문으로 생각했는데, 문화재청 홈페이지 설명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경상(經床) 등의 목가구에서 등장하는 박쥐형 풍혈과 당초문 및 호족형 다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그 중앙에는 향합(香盒)을 넣어두기 위한 방형의 홈을 뚫어 놓았다.

 

양쪽의 상다리는 호족형 다리입니다.

호족(虎足)은 개다리 소반 보다 더 심하게 굽은 다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풍혈(風穴)은 풍혈반의 풍혈을 뜻하는 것 같으며,

"소반 중에 다각의 판각 다리에 시원한 투각을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다리 하부에는 안상(眼象), 혹은 풍혈(風穴)의 개구가 뚫려 있고, 좌우측방에는 투조가 되어 있는 것으로 판형은 12각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것을 풍혈반(風穴盤)이라고도 부른다"(문화콘텐츠 용어사전)

 

호족과 풍혈의 한문은 개인적인 시각이며, 그에 준하여 검색하여 자료를 살펴 보았습니다

 

묘역 비석

옛 묘비. 증수 묘비. 망주석(1)

묘비를 묘 측면에 새웠으며, 망주석을 봉분 가깝게 조성하였습니다

 

유인 진양 강씨 지묘

중수한 묘비입니다

 

정사룡(鄭士龍) 찬(撰)

정사룡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미루어 옛 묘비에는 명(銘)과 병서(倂書)를 새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사룡(1491~1570)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0307

 

가정 육년 이월일 입석(嘉靖 六年 二月 日 立石)

단기 사천이백팔십일년 무자 이월 일 중수(檀紀 四千二百八十日年 戊子 二月 日 重竪)

 

묘비는 진양 강씨 사후 2년이 지난 1527년 2월에 세웠음 을 알 수 있으며, 1948년에 중수하였습니다.

 

묘비

귀부. 비신. 이수를 갖추었습니다.

훼손되어 명문은 확인할 수 없지만 중수비 명문으로 1527년에 세웠음을 알 수 있으며, 비명은 조사룡이 찬한 묘비입니다.

 

묘비 후면

귀부의 꼬리로 미루어 후면입니다.

 

그런데

이수 전면에는 봉황(학?), 후면에는 용을 새겼습니다

 

이수 후면

분명 우측 상단에 용머리를 새겼습니다.

 

전면 이수

좌우에 봉황(학?)을 새겼습니다.

운문, 뒤집힌 연잎

 

귀부

 

조선 전기

유교 질서가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시기에 여자의 비신에도 용을 새긴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수 하부에 바람에 뒤집힌 연잎. 제 기억에는 조선 후기에 등장하는 장식으로 알았는데, 기억이 잘 못 되었겠지요.

 

망주석

좌우 2기, 귀부가 아닌 사자좌입니다.

머리를 봉분으로 향했으며, 간주석이 팔각, 화려하게 장식한 이수 위에는 보주(연봉)를 올렸습니다.

 

망주석(1)

 

사자좌

갈기, 늘어진 귀, 방울을 달았습니다.

 

사자좌는 신도비, 선정비 등에는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며, 부도탑비, 부도, 석탑, 석등, 불단 등 불교 문화재와 친연성이 있는 상입니다. 혹 진양 강씨는 불교 신자가 아니었을까요?

 

연잎. 연꽃, 연봉

연꽃 중앙에는 홈을 내고, 별조의 화심(?)을 끼운 것 같습니다

 

망주석(2)

 

(아래) 진양 강씨 묘

(위)  허추 묘

 

허추 묘

봉분. 상석. 묘비. 망주석를 갖추었습니다.

 

허추(許錘. 1455~1521)

본관은 김해, 참봉을 지냄, 지수에 처음으로 들어와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즉, 김해에 처음으로 들어와 진주의 명문가 집안으로 장가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상석

진양 강씨 묘 상석에 비하면 호족, 풍혈이 거의 생략되었으며, 향합도 형식적입니다

 

향로석

 

옛 묘비와 중수 묘비

진양 강씨 묘처럼 묘비를 묘 측면에 세웠습니다

 

중수 묘비

장사랑 기자전 참봉 김해 허공지묘 (將仕郎 箕子殿 參奉 金海 許公之墓)

 

가정 원년 이월 일 입석(嘉靖 元年 二月 日 立石)

옛 묘비는 1522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을 형편없이 찍어 비문을 찬한 사람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조 ㅁㅁ

부인 진양 강씨 비문을 찬한 사람과 같은 벼슬을 지낸 분입니다

 

단기 사천이백팔십일년 무자 이월 일 중수(檀紀 四千二百八十日年 戊子 二月 日 重竪)

진양 강씨 묘와 더불어 1948년에 중수한 비석입니다

 

부인 묘비석은 귀부지만, 지아비 허추의 묘비는 소박한 방형의 묘비입니다

 

 

망주석(1)

상석 아래 구역에 위치

귀부, 팔각 간주석, 이수를 갖추었습니다

 

부인 진주 강시 묘역 사자좌에 비하면 간결합니다

 

이수(비 머리)

진주 강씨 묘역 망주석의 이수 전, 후에는 봉황( 학?), 용이 새겨져 있으나 허추 묘역 망주석 이수에는 연화문으로만 장식하였습니다. 측면에는 연맥을 굵게 조식하였고, 연꽃 중심에는 화심을 별조로 끼운 홈이 있습니다. 위에는 보주(연봉)를 올렸습니다

 

두 줄기 연맥이 이수 위로 올라가 연봉을 휘감고 있습니다.

연잎이 바람에 뒤집힌 모습입니다.

 

망주석(2)

새롭게 조성하였습니다

 

허추 부부 묘역

진양 강씨 묘역의 석조물은 화려하며,특히 상석의 호족, 향합, 풍혈, 망주석의 사자좌와 용문양은 이채롭습니다.

이에 반하여, 허추 묘는 비슷한 문양인 것 같지만, 5년 후에 조성된 부인 묘역 석물보다 소박하게 조성하였습니다.

 

비교하면

진양 강씨 묘역 상석의 호족, 풍혈이 화려하지만, 허추 묘역 상석에는 호족이 거의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부인 묘비는 귀부이며, 이수에 용과 봉황(학?), 연화문을 새겼지만, 지아비 묘비는 방형 대좌, 이수에는 연화문만 조식하였습니다. 망주석 대좌는 부인 묘역이 사자좌이나, 남편 묘 망주석은 귀부입니다.

 

이러한 장식의 차이는

허추가 진주 지수에 첫 입향한 인물로 기반이 없으며, 처가는 지역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명문가인 진양 강씨 집안과 혼인한 까닭일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부인 묘역을 더 화려하게 꾸민 것은 유교가 통치 이념인 조선시대, 부부유별에 반한 묘제로 생각됩니다.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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