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제주

제주...고산리 영산비

임병기(선과) 2021. 7. 17. 10:40
728x90

영산비

고산 1리 사무소에 보관

1757년(영조 33년) 수월봉 정상에는 세운 금표비입니다.

 

(전)유고근산금 건륭 22년 정축 5월 일

有靈高近山禁 乾隆二十二年丁丑五月 日

 

육안 구분은 힘들지만, 금경(禁耕)이며, 세운 시기 뒤에도 돈포면(敦浦面)이 있다는 자료도 보입니다.

 

有靈高近山禁(耕) 乾隆二十二年丁丑五月 日(敦浦面)

경(耕) 있다면 경작을 금한다는 의미지만, 경(耕)이 없다면 수월봉에 올라가는 것을 금한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제주일보(2015.08.03. 최동철 기자)에는 하마비로 해석한 기사도 실려있습니다.

"698년(숙종 24년) 수월봉을 마주한 제주목사 남지훈은 영산이라며 감탄을 했고, 대정현감에게 이곳에 영(靈)이 있으니 경작을 비롯해 모든 행위를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1757년(영조 33년) 수월봉 정상에는 ‘경작을 못하고, 말을 타고 갈 수 없으며, 묘를 설치할 수 없고, 방화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새겨진 ‘영산비(靈山碑)’가 세워졌다. 일명 하마비(下馬碑) 또는 사금비(四禁碑)로 불려 왔다."

 

영산비.전.후면

현재 보관 장소에서 후면 촬영이 어려워, 제주 환경일보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전)有靈高近山禁耕 乾隆二十二年丁丑五月 日 敦浦面

(후)去戊寅年 南使主定標處

 

(후)

거 무인년 남사주 정표처(去戊寅年 南使主定標處)

지나간 무인년에 남지훈 목사가, 1698년에 정표처로 정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남목사의 재임기간이 숙종 25년(1699) 기묘 5월~ 27년(1701) 신사 9월에 이임이라는 자료도 보입니다
즉, 무인년은 오류라는 것입니다

 

남사주(南使主)

 

거무(去戊)

 

인면(寅年)

정표처(定標處)

 

복원한 영산비

 

(前略) …15세기 때 流配人들은 水月峰에서 龍王之神을 받들어 祈雨祭 祭壇을 設置하였으며 숙종24년(1698)에 남지훈(南至薰) 목사가 靈山碑를 세우도록 정표처(定標處)를 정하였다. 이 뜻을 받들어 영조33년(1757) 〈有靈高近山禁耕碑〉를 建立하여 大靜縣監이 管理하도록 하였다.그 후 日帝强占期에 靈山碑가 埋沒되는 등 자취가 사라질 뻔했으나 住民이 이를 發見하여 保存하던 중 …(中略) … 원래의 영산비는 능선중앙부 고산리 3755번지에 있었으나 비의 훼손 우려가 있어 別所에 보존중이며 대신 모조비를 여기에 건립한다. …(後略), 2000년 12월 31일

 

(글,사진 출처 : 제주환경일보}

 

고산리 영산비

영산비이며, 금표비입니다.

기회가 되면 복원된 영산비를 찾아서 경작, 방화, 분묘, 하마를 금한다는 사금(四禁)의 내용도 확인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금표

https://blog.daum.net/12977705/8726208

 

2021.06.17

728x90
728x90

'제주특별자치도 > 제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절부암(節婦岩)  (0) 2021.07.17
제주...용수리 방사탑  (0) 2021.07.17
제주...별방진성  (0) 2021.07.14
제주...용문사 목조석가여래좌상. 석조 미륵  (0) 2021.07.13
제주...한동 환해장성  (0) 2021.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