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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진천군

진천...이영남 장군 묘. 용마총

by 임병기(선과)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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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 이영남 장군 묘

덕산면 기전리 산 88-4. 가족묘 하단에 위치

 

충용사(忠勇祠)

이영남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제를 봉양하는 사당입니다

 솟을삼문(守義門)과 사당(忠勇祠)이 낮은 담장에 둘러 싸여있습니다.

 

긴 겨울?

창살 문종이가 훼손되어있습니다.

 

가족 묘역

조부, 부모, 장군묘. 용마총

 

이영남 장군 묘

병풍석의 십이지상이 마치 경주 김유신 장군 묘역을 떠오르게 합니다.

무덤은 순국 후 줄곧 수행한 노복(일학)이 영구를 뫼시고 돌아와 순국한 다음 해(1599년) 봄에 이곳 갈현산 선영 하에 안장하였다고 합니다.

 

이영남

"1566년 2월 13일 이곳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 159번지에서 태어나 12세 소년 시절에 부모상을 당하여 3년 시묘한 효자였다.이후 무예를 배우기 시작 19세(1584년)에 무과에 급제 선전관 훈련원첨정 도총부 경력을 거쳐 1592년 27세때 임진왜란이 일어날 시는 경상우수사 원균 휘하의 율포만호로 있었다. 원균이 첫 싸움에서 패하자 전라 좌수사로 있던 이순신 장군을 5,6차례 찾아가 청군 하였다.

이후 소비포권관으로 옥포 당포 당항포 한산대첩등 10여 차례의 해전에서 충무공을 보좌하여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해전에서 승승장구한 장군은 1595년 임기를 마치고 태안군수 강계부판관 장흥부사를 역임하고 1597년 9울 16일 명량해전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1598년 제56대 가리포첨사 겸 조방장으로 임명된 장군은 조수에 익숙한 완도 장정들을 고금진에 소집 훈련시켜 수군을 정비 1598년 11월 19일 최후의 노량해전에 출전하여 대승을 거두고 33세로 충무공과 함께 순국 하셨다.

 

순국후 선무운종공신 일등 병조판서로 추증 되었으며 전남 완도군 고금면 덕동리 충무사에는 위패와 영정이 충무공과 함께 배향 되어 있으며 진천읍 삼수초등학교 앞에 현충비가 세워져 있다."(다음 백과사전)

 

*** 이영남 장군의 출생 년도

다음 백과(1566년), 문화재청, 위키백과(1563년), 디지털진천문화대전(1547년), 진천군청(표기 없음)

 

용마총(龍馬塚)

장군이 무예를 연마하던 어린시절 함께한 말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장군이 사랑하던 용마(龍馬)

그런데

왜 용마(勇馬)로 읽힐까요?

 

우리나라의 동물 무덤

https://blog.daum.net/12977705/8726933

 

연리목

스토리텔링이 재미있습니다.

 

단장 못지않게 관리도 중요합니다.

충용사 창살 문종이 교체가 시급하며, 자료마다 제각각인 이영남 장군의 출생 년도 통일되어야 합니다.

 

2021.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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