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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세종특별자치시

세종...연서초교 황국신민서사비

by 임병기(선과) 2021.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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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향토박물관

십 년 전에 들렸으며, 오늘은 일제강점기 황국신민 서사비 확인 차 왔습니다.

 

연기 향토박물관(201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061?category=5158

 

 

연서초교 황국신민서사비

 

임영수 박물관장 님의 글입니다.

"연서초등학교 화단에는 커다란 돌이 세워져 있었다. 콘크리트로 받침대를 만들어 놓아 옮기기 어렵게 만들었는데 전면에는 희미하게 ‘○○동산’이라 쓰여 있고 뒷면은 정으로 대충 쪼아 놓았다. 그런데 그것을 살펴보니 뒷면에 정으로 미쳐 다 쪼아내지 못한 글씨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황국신민의 서사」의 내용 중 일부였다. 그 후 어느 날 그곳을 지나는데 교정에 있는 나무를 베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교장선생님을 만나 그 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 나무를 베는 장비가 있어 그것을 싣고 박물관에 옮겨 놓았다. 연서초등학교는 1935년에 개교하였으니 1937년에 세운 황국신민의 서사비가 존재하였 을 것이다. 이곳의 비도 학교에 세웠던 아동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단에 서사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황국신민서사비皇國臣民誓詞碑

 

"황국 신민 서사 비는 1930년대 후반 중일 전쟁이 시작되면서 민족 말살 정책의 하나로 내선 일체·황국 신민화 등을 강요하면서 일본 제국주의가 암송을 강요한 황국 신민 서사를 새긴 비이다. 황국 신민 서사는 조선 총독부 학무국이 교학(敎學) 진작(振作)과 국민 정신 함양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기획하였으며, 학무국 촉탁으로 있던 이각종(李覺鍾)이 문안을 만들었고, 학무국사회 교육과장 김대우가 관련 업무를 집행하였다. 이에 따라 1937년 10월 2일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이 결재함으로써 공식화 되어 보급되었다.

 

황국 신민 서사는 학교·관공서·은행·회사·공장·상점 등의 모든 직장의 조회와 각종 집회 의식에서 낭송이 강요되었으며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의 실천 요강에는 기회 있을 때마다 황국 신민 서사를 낭송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보급을 위해 아동용 100만 부, 일반용 20만 부를 인쇄·배포했으며 신문·잡지 등에 싣는 한편, 영화로 제작·상영하고 라디오로도 방송·선전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우리나라의 황국신민서사비

http://cafe.daum.net/moonhawje/DjZP/1032

 

 

 

훼손되었지만 충분히 전체 내용을 추론 가능한 명문이 남아 있습니다.

 

 

초등학교 서사비문(아동용)를 새겼습니다

1) 私共ハ、大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2) 私共ハ、心ヲ合ワセテ天皇陛下ニ忠義ヲ盡シマス[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3) 私共ハ、忍苦鍛錬シテ立派ナ強イ國民トナリマス[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

다]

 

성인용

1)我等ハ皇國臣民ナリ、忠誠以テ君國ニ報ゼン[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이다. 충성으로서 군국(君國)에 보답하련다]
2) 我等皇國臣民ハ互ニ信愛協力シ、以テ團結ヲ固クセン[우리 황국 신민은 신애협력(信愛協力)하여 단결을 굳게 하련다]
3) 我等皇國臣民ハ忍苦鍛錬力ヲ養イ以テ皇道ヲ宣揚セン[우리 황국 신민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여 힘을 길러 황도를 선

양하련다]

 

 

 

임영수 관장 님의 관심으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귀중한 문화유산이 이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자치단체와 협력하여 안내문을 설치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었으면 좋을 듯합니다.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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