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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세종특별자치시

세종...연기 향토박물관

by 임병기(선과)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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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향토박물관

십 년 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2010년)

 

연기 향토박물관(2010년)

https://blog.daum.net/12977705/8723061?category=5158

 

 

 

연남 초교 황국신민서사비

https://blog.daum.net/12977705/8727137

 

 

연서 초교 황국신민서사비

https://blog.daum.net/12977705/8727138

 

 

 

기자석, 벅수. 미륵, 동자석

 

 

 

벅수(장승)

석탑 옥개석을 갓으로 올려두었습니다.

 

 

선각으로 새긴 전형적인 벅수입니다

 

 

벅수 측면

귀가 보이고, 땅 속에 묻어 세웠음을 보여줍니다.

 

 

(2010년)

 

 

우측도 벅수로 모신 듯합니다.

 

 

석탑 옥개석

벅수 갓으로 전용되었습니다.

 

 

낙수면 물매가 급하며

내림마루를 표현하였고

1단 탑신 굄을 조출하였습니다.

 

하부

3단 층급 받침, 절수구, 음각의 추녀가 있습니다.

 

 

 

옥개석 하부

3단 층급 받침, 절수구가 있고, 음각으로 추녀를 새겼습니다.

 

 

 

전전가대지묘(前田家代之墓)

일본인 집안 묘표석 같습니다.

 

 

묘법(妙法)

불교 신자(?)였던 묘 주인공 명문 같기도 하고...

 

 

 

회목가누대지총(栃木家累代塚)

일본인 집안 묘표석.

 

 

망일 일자를 기록하였고...

소화 육 년, 구 년, 십일 년(1931...)

 

 

망자 기록.

 

 

 

석조약사여래좌상

 

 

나발, 육계가 낮고, 백호 표현

살찐 볼, 코를 제외한 눈, 입은 선각입니다.

 

삼도

약기를 지물로 든 약사여래좌상입니다.

 

법의?

통견, 가사를 우견편단처럼 걸친 상?

목걸이로 장식한 우견편단?

 

 

(2010년)

 한 분은 실내로 모신 것 같습니다.

 

 

 

 

삼층석탑

기단부는 망실(매몰), 탑신석은 후보물과 각기 다른 석탑 부재의 혼용처럼 느껴집니다.

삼 층 옥개석 위 부재는 석탑부재가 아니며, 조선 후기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2010년)

 

 

 

2,3층 탑신석은 본래 부재로 추정되며, 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옥개석 상부에 굄을 생략,

낙수면 물매가 급하고, 전각은 반전은 뚜렷하며, 층급받침은 아래로부터 4*4*3, 절수구가 있습니다.

 

 

옥개석 상부

 

 

 

일제강점기 표석

 

 

길전 소유지(吉田所有地)

"이 표석비도 굴삭기를 운전하시는 분이 조치원 신흥리에서 출토된 것을 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전면에 길전소유지(吉田所有地)라고 쓰여 있고 다른 곳에는 글씨가 없다. 이것으로 보아 길전(吉田)이 소유한 땅의 경계지에다 세워 놓은 것으로 볼수 있다."(임영수 관장 님 글 발췌)

 

 

천년농장림(千年農場林)

"1936년에 쓰인 연기지에 그 내용이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그리고 1998년에 금남초등학교 80년사를 발간 시 대평리에서 살면서 해방 후 면장을 지낸 안승주님께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본인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 금강변 버려진 땅을 개간하였는데 말을 타고 달리면서 풀숲에 불을 놓아 농장을 만들었지. 감성에 있는 시장을 이곳으로 옮기고 신사를 짓고 학교를 만들고, 면사무소를 만들어 금남면의 중심지로 만들었어. 그때 천년농장 주인이 가장 큰 부자로 살았어.” 

비의 크기는 가로 22cm, 세로 67cm로 자연석에 앞면에만 천년농장림(千年農場林)이라 쓰여 있다."(임영수 관장 님 글)

 

 

임영수 관장 님 또는 학예사 분을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방송 촬영 중이어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전 답사에서도 놓쳤던 실내전시관 유물도 관람 못하고 발길을 돌려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0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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