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부산시

부산...시립박물관 실내전시실 불상 외

임병기(선과) 2020. 12. 26.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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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여래 삼존불

 

 

 

석남암수 납석제 사리호

 

지리산 석남암수에대한 짧은 생각

http://blog.daum.net/12977705/8726696?category=5248

 

 

청동여래입상.통일신라

"높이가 15.5㎝이므로 소형 불상 가운데서는 비교적 큰 작품인데, 광배(光背)와 대좌는 모두 남아 있지 않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 육계(肉髻)가 높직하며, 육계 가운데에 계주(髻珠)를 꽂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뚫려 있다. 얼굴은 둥근 편이고 살이 오른 모습이며, 신체에 비해서는 머리가 크고 특히 코가 큰 편이다.

대의(大衣)는 통견(通肩)의 형식인데 가슴 부분에서 배꼽 아래까지 ‘U’ 자형 옷 주름을 표현하였고, 다리 부분에서는 양쪽으로 갈라져 각각 긴 ‘U’ 자형 옷 주름을 짓고 있다. 옷 주름은 비교적 얕은 선새김으로 표현되어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가슴 앞에서 들어 엄지와 중지, 약지를 구부렸으며,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려 역시 엄지와 중지, 약지를 구부렸으므로 아미타 구품인(阿彌陀九品印) 가운데 하품 중생인(下品中生印)의 표현으로 보인다."

 

 

석탑부재

 

 

청자나한상.고려

 

 

 

상주 안수사명 동종

 

 

 

 

 

음통. 단룡의 용뉴

입상화문 표현

상,중,하대로 구획하고 상,하대에는당초문을 새겼습니다. 4개 유곽은 상대에 접했으며, 9개 유두를 돌출하였습니다

종신에는 4개 당좌와 하늘에서 내려오듯 천의를 새긴 비천상을 연화좌에 모셨으며, 비천상 위에는 보개를 새겼습니다.

종신하부의 조성기를 통해 경북 상주의 안수사에 봉안되었던 동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 금고

"크기는 높이가 12㎝, 직경이 46㎝이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되는 반자로 징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한 면은 두드리는 부분이고, 다른 한 면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안은 비어 있다. 두드리는 면을 3조의 융기문대로 세 부분으로 구획하고, 가장 바깥 부분에는 간략하게 4개의 구름 문양을 같은 거리로 배치하였다.

가운데 부분에는 아무런 문양도 표현하지 않았으며, 안쪽 부분에는 연화문(蓮花紋)을 새겼다. 연화문은 중앙의 자방(子房)에는 연자를 표현하였고, 자방 외곽에 16판의 꽃잎을 중첩되게 배치하였다."

 

 

금동 여래 좌상.고려

"높이는 19.5㎝이다. 본래 금동불이었으나 지금은 전면에 금 도금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머리는 나발이며, 높은 육계 위에 2중의 정상 계주를 표현하였다. 눈은 반개하였으며, 좁은 인중에 귓불과 턱이 비교적 긴 편이다. 목에는 삼도의 표현이 없다.

법의는 우견 편단인데, 오른쪽 어깨에도 대의 자락을 걸쳐 옷 주름 표현은 사실적이지 않다. 대좌는 위에는 앙련, 아래에는 복련을 새긴 연화 대좌이며, 연잎은 복판으로 표현하였다. 두 불상 모두 광배는 없고 얼굴은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며, 우견 편단의 옷차림이지만 오른쪽 어깨에 옷자락을 걸친 형식도 동일하다."

 

 

금동보살입상

국보 제200호. 8세기 후반 통일 신라 시대 초

 

 

"전체 높이는 34㎝로, 정면을 향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이 높이 솟아 있고, 머리카락의 표현은 없다. 얼굴은 아래턱은 살이 올라 풍만하고, 치켜 올라간 가는 눈과 오뚝한 콧날, 작은 입이 새겨져 있다. 신체는 다소 뻣뻣한 느낌이 있으나 떡 벌어진 어깨와 풍만한 가슴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곡선은 부드럽고 탄력이 넘친다.

상체의 옷자락은 양 어깨에서 발아래까지 늘어져 있는데 왼쪽은 일부가 끊어져 있다. 하체의 옷은 좌우 대칭으로 ‘U’ 자형 주름이 표현되었다. 양팔에는 팔찌 외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오른손은 옆으로 올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어 정병(淨甁)을 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동 보살좌상

"크기는 높이가 16㎝, 너비가 10㎝이다. 화려한 조각이 돋보이는 높은 보관 뒤로 검게 채색한 보발(寶髮)을 표현하였고, 늘어진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흘러내렸다. 귀 아래에는 두툼한 귀걸이를 표현하였으며, 백호(白毫)가 이마 중앙에 혹처럼 볼록하게 표현되어 뚜렷이 드러난다. 눈썹과 눈, 콧수염은 검은 먹으로 그렸으며 입은 붉은색으로 채색하였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지 않았고, 가슴에는 화려한 영락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상체는 나신이며, 양쪽 어깨 부분에서 각각 2조의 선으로 표현된 천의(天衣)가 허리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앞으로 흘러나와 두팔목을 감싸고 대좌(臺座)로 흘러내리고 있다. 양팔 상단부에는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두 손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무릎 위에서 선정인(禪定印)을 맺고 정병(淨甁)을 받들고 있다. 양 무릎 위에도 영락이 표현되어 있으며, 하의인 군의(裙衣) 자락은 무릎 앞에 모아져 있다. 대좌는 상대와 하대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대에는 앙련(仰蓮)의 연꽃 문양 위에 연주문(蓮珠文)을 돌렸고, 하대에는 복련(覆蓮)의 연꽃 문양 아래에 연주문을 돌렸다.

 

금동 보살 좌상은 보관에 화불은 없으나 정병을 받들고 있어 관세음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신체의 비례가 아름답고 사실적인 세부 묘사가 뛰어나 고려 후기 보살상의 제작 기법 및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박물관 소장 유물과 전시 유물은 서로 다릅니다.

오늘도 석조여래좌상 등 몇몇 옛님은 그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수장고 열람은 비제도권 무지랭이에게는 요원한 바람이고.....

 

2020.11.24

 

*설명(" ")은 부산역사문화대전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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