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박물관 야외 전시장의 비석은 2,008년 글에 간략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http://blog.daum.net/12977705/6406880
동래남문비 東萊南門碑
1670년 임진왜란 때 왜적을 맞아 장렬하게 싸운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하여 동래부 군·관·민의
순국 충절을 기록하여 널리 알리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복원한 이수
동래남문비(복원)
부산진성 척화비(斥和碑)
우리나라의 척화비(글)
http://blog.daum.net/12977705/8726471
우리나라의 척화비(사진)
http://blog.daum.net/12977705/8726470
서문 외 석교비 西門外石橋碑
조선 후기 부산진성 서문 밖에 있는 돌다리를 수리한 일을 기념하여 세운 비.
1785년(정조 9)
호천 석교비 虎川石橋碑
1711년(숙종 37) 호천에 있는 나무다리가 썩어서 돌다리로 바꾸어 놓으면서 세운 비
요즘의 부산 범내골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처 석교비四處石橋碑(맨 우측. 2008년)
"조선 시대 당시 동래부의 곳곳에 세워져 있던 나무다리는 부식이 심해 보통 1~2년마다 다시 고쳐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때마다 백성에게 그 비용을 거두어 충당한 탓에 이들의 고통이 심하였다. 이에 강위성(姜謂聖)이 백성의 부담을 덜기 위해 돌다리를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아 박도유(朴道裕), 박사인(朴師仁) 등 4~5명이 지역을 돌며 모금하자 당시 동래부사 이문원이 자신의 녹봉을 기부함으로써 돌다리가 완성되었다. 사처석교비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1781년(정조 5) 3월에 세운 것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우리나라의 옛 다리
http://blog.daum.net/12977705/8726937
유원각 선생 매안감고비柔遠閣 先生 埋案感古碑 (2,008년)
"석비는 광무 10년(1906)에 세워졌으며, 조선 후기 대일 외교의 실무 관청이었던 유원각(柔遠閣)과 관련된 유일한 금석문 자료다. 유원각 선생’은 통사청에 근무했던 소통사라고 한다. 소통사는 일본인 역관인 훈도, 별차를 보조하면서, 왜관의 각종 실무에 종사한 동래부 소속의 하급 통역관이었다."(부산 역사문화대전)
효암리 월경 전복 채취 금령 불망비(孝岩里 越境 全鰒 採取 禁令 不忘碑)
http://blog.daum.net/12977705/8727041?category=5228
약조제찰비(約條製札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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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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