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복사탑 중창비(演福寺 塔 重創碑)
용산 철도박물관 뜨락에 위치
태조 이성계의 공덕으로 재건된 개성 연복사 오층 불탑의 중창비이며, 일제 강점기에 옮겨 왔습니다.
연복사(다음 백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36786
(본문에는 중창비가 개성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복사(해동역사)
광통보제사(廣通普濟寺)는 왕부의 남쪽 태안문(泰安門) 안에서 곧장 북쪽으로 백여 보의 지점에 있다.
절의 액자는 관도(官道) 남향쪽에 걸려 있고, 중문(中門)에는 ‘신통지문(神通之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정전(正殿)은 극히 웅장하여 왕의 거처를 능가하는데, ‘나한보전(羅漢寶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나한보전 가운데에는 금선(金仙), 문수(文殊), 보현(普賢) 세 상(像)이 놓여 있고, 곁에는 나한(羅漢) 5백 구(軀)를 늘어놓았는데 그 모양새가 고고(高古)하다. 양쪽 월랑(月廊)에도 그 상이 그려져 있다.
정전 서쪽에는 5층 탑이 있는데 높이가 2백 척이 넘는다.
뒤는 법당이고 곁은 승방인데 1백 명을 수용할 만하다. 맞은편에 거대한 종이 있는데 소리는 가라앉아 시원하지 못하다.
전례에 따라 예물(禮物)의 나머지 말[馬]과 고려에서 정사(正使)와 부사(副使)에게 준 것 도합 2필에 백금 2근을 더해 향화(香花)와 과일, 채소의 비용으로 주고, 불사(佛事)를 하고 불승(佛僧)을 공양하였는데, 정사와 부사는 몸소 가지 않고 다만 도할관(都轄官)과 제할관(提轄官) 이하 삼절을 보내어 예를 행하게 하였다. 《상동》
살펴보건대, 《동국여지승람》에는 “연복사(演福寺)는 송악(松嶽)의 도성(都城) 중부(中部)에 있다.
옛 이름은 보제사(普濟寺)이며, 대전(大殿)을 능인전(能仁殿)이라 하고, 그 앞문을 신통문(神通門)이라 한다.” 하여 《고려도경》에 실려 있는 것과 내용이 같다.
《고려사》에는 “충렬왕 2년(1276)에 보제사에서 법석(法席)을 베풀었으며, 공민왕 16년(1367)에 연복사에 행행하여 문수회(文殊會)를 베풀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보제사를 연복사라고 이름을 고친 것은 대개 충렬왕 이후의 일이다.
지금 성안에 있는 절의 옛터 밭 한가운데에 비석이 있는데, 크기는 1장 남짓하다. 용(龍) 두 마리가 위에 새겨져 있는데, 조각한 솜씨가 아주 공교롭다. 그 지방 사람들이 이를 ‘떡각시[餠閣氏]’라고 부른다. -방언에 부(婦)를 각시[閣氏]라고 한다.- 비면(碑面) 위에는 ‘연복사탑중수지기(演福寺塔重修之記)’라는 여덟 글자가 전서(篆書)로 새겨져 있으며, 기문(記文)의 글자는 마멸되어서 판독할 수가 없다. 지금 내성(內城)의 남문루(南門樓)에 걸려 있는 종은 바로 연복사에 있던 종으로, 언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모른다. 종의 윗부분에는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명(銘)이 새겨져 있는데, 자획이 뚜렷하여 판독할 수 있다.(출처.한국고전종합 DB)
[본문의 연복사탑중수지기(演福寺塔重修之記)는 연복사탑 중창지기(演福寺塔重剙之記)의 오기입니다]
연복사 탑 중창비(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일제강점기 사진)
연복사 탑 중창비(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일제강점기 사진)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으며 비신은 망실된 상태입니다.
귀부가 낯설어 보이며, 이수의 제액 형태는 고려말 원나라와 명나라에서 유입된 양식이며 진주 용암사지 대천태종홍자국통비(大天台宗弘慈國統碑)도 동일한 계열입니다
진주 용암사지 홍자국통비
이수
제액
연복사탑 중창지기(演福寺塔重剙之記)
이수 측면
이수 후면
연복사 탑 중창비
비신은 사라졌지만 권근이 지은 비문은 전해 옵니다.
비문 내용에 따르면 오층탑은 목탑이었으며(남쪽에 5층각 탑이 있더니. 其南有塔五層閣)으로 각(閣)이라는 내용으로 추측컨대 쌍봉사 대웅전, 법주사 팔상전처럼 전각 형태 탑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비문(안에 3개의 연못과 아홉 개의 우물을 팠으며 그 남쪽에 또 5층의 탑을 세워서 풍수설에 맞추었다.)에 의하면 풍수 비보탑이었습니다.
연복사 탑 중창비문(동문선. 한국고전종합 DB)
귀부
조금 낯설어 보입니다
연복사 오층탑
권근의 중창비 실기에 그 모습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상략)
五層復建畢工役 5층 탑을 다시 세워 공사를 마치되
經構不擾農民力 농민의 힘을 번거롭게 하지는 않았다네
崢嶸突兀配崧嶽 높다랗고 우뚝함은 송악과 맞먹는데
輝映雲霞燿丹碧 구름과 놀이 비춰 단청이 눈부시네
上安佛骨厥靈赫 위에는 사리를 봉안하여 영험이 빛나고
中庋大藏具萬軸 중간에는 대장경 만 축(軸)을 갖추었으며
下置毗盧備嚴餙 아래에는 장엄하게 비로자나 초상을 안치하여
(하략)
남북 교류가 재개되면 당장 달려가고픈 개경
연복사지, 연복사 동종도 답사할 기회가 오겠지요.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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