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공주시

공주...계룡산 중장리사지(사자암지) 삼층석탑. 부도(승탑)

임병기(선과) 2020. 11. 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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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리 사지

계룡산 사자암지(북사자암지)로 추정되는 절터입니다.

창건과 폐사의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지의 석탑 부재, 갑사로 반출된 석탑.석불, 부도로 미루어 고려 중기 이전에 창건되었으며, 1,693년 오재정의 유계룡산록에 '옛터'로 기록되어 있어 그 이전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갑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용문 폭포를 경유하여 신흥암으로 오릅니다.

3~40분 후 만나는 포장된 임도 오른쪽으로는 신흥암이며, 사지는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우측에 사지의 축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중장리 사지는 옛사람들의 유산기에 등장하는 사자암으로 추정되며, 갑사의 갑사 부도, 석조약사여래입상, 삼층석탑의 본향이라고 전합니다

 

유산기(한국의 사지에서 발췌)

1693년 오재정 유계룡산록(吳再挺 遊鷄龍山錄)

사자암 옛 터를 지나 향로봉에 올라 잠시 앉아 식히고 난 뒤에, 북사자암에 들어서게 되었다.…

북사 자암에서 갑사로 오는 도중에 男女 浮屠를 보았는데, 이 부도는 매우 교묘하게 만들어져 있었다.’라고 하였다.

(1,693년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00년 송상기 유계룡산기(宋相琦 遊鷄龍山記)

몇 리쯤 가자 옛 절터가 있는데, 거기에는 부도와 석탑이 있었다. 여기로부터 산은 더욱 높고 길은 더욱 험하였다. 사자암은 계룡산 뒤쪽 봉 우리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암자에는 승려 몇 명이 있었다.’라 하였다. 

 

1726년 김상봉 유계룡산기(金相鳳 遊鷄龍山記)

少年塔과 부도 2기를 구경한 다음 갑사 해장전에 유숙하였다.… 사자암에서 慧俊 노승을 만나 수십 首가 실린 時軸을 구경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일제강점기

1907년에서 1915년에 조사한 후 작성한 『古蹟調査表』에는 갑사 전각 및 주요 유 물이 정리되어 있고, 이곳에는 ‘삼층석탑’과 ‘계룡산 고려 부도’ 항목이 실려 있다. 關野貞 『朝鮮遺蹟一覽』에는 ‘삼 층석탑’만 확인된다.

또한 1916년까지 조사한 유적과 유 물을 지역별로 정리한 『朝鮮遺蹟遺物之硏究』에는 대자암과 사자암, 신흥암, 내원암, 대성암을 갑사 산내암자로 기술하고 있다. 또한 갑사에 石浮屠數基가 있는데 ‘시대 불명’이라고 적혀 있으며,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있다고 한다. 『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에는 “鷄龍山中壯里高麗 浮圖”라고 칭하면서 계룡산에 있다고 하고, 승탑 설명이 있다

 

위의 한국의 사지에 실린 유산록에 등재된 '남녀 부도’와 ‘부도와 석탑’, ‘소년탑과 승탑 2기’는 명확하게 무엇을 지칭한 것일까요?

 

한국의 사지에 기록된 내용에 첨언하면 공주 갑사 승탑을 남자 부도, 사지에 남아 있는 부도를 여자 부도로 추정되며, 더불어 석탑은 갑사 중사자암지 삼층석탑과 사지에 도괴된 석탑을 이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계룡산 갑사

http://blog.daum.net/12977705/8723741?category=5161

 

공주...계룡산 갑사.

괴목대신 갑사를 다녀온 뒤에 대학노트에 기록해 둔 답사기를 살펴보아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반신반의 하며 마누라에게 갑사 다녀온 기억이 있나? 라고 물었더니 저층 아파트에 살았을 때

blog.daum.net

 

 

갑사 부도

 

 

갑사 석조약사여래입상

 

 

갑사 중사자암지 삼층석탑

 

 

석축

사지에는 크게 6~7 곳에 정교하게 쌓았던 석축이 남아 있습니다.

사지를 관통한 임도 때문에 대부분 무너진 상태이며, 맨 하단의 석축만 본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 석축 위에 자란 나무가 정면으로 보입니다.

이 곳 뒤편에 부도가 있습니다.

 

 

원구형 부도

 

방형 지대석

하대석은 상단석과 하단석이 일석이며 상단석에 복련 조식

중대석과 상대석이 일석이며, 상대석에 앙련 조식

원구형 탑신, 당호를 새기지 않았습니다

옥개석

방형이며 상부에 내림마루를, 하부에는 추녀를 새겼고 상륜에는 연화 보주가 있습니다.

 

1693년 오재정 유계룡산록에 부도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봉안된 당호를 새기지 않은 부도입니다.

 

주인공이 전하지 않는 조선 후기 부도입니다.

 

 

 

기단부

방형 지대석

하대석은 상단석과 하단석이 일석이며 상단석에 복련 조식

중대석과 상대석이 일석이며, 상대석에 앙련 조식

 

 

탑신

 

 

 

옥개석 하부의 추녀

 

 

옥개석

방형이며 상부에 내림마루를, 하부에는 추녀를 새겼고 상륜에는 연화 보주가 있습니다.

 

 

석탑지

부도 향우 측 1시 방향 100여 미터 후방에 위치합니다

 

 

석탑지

정면 석축

 

 

석탑지

측면 석축

 

 

석탑 부재

도괴된 상태로 널 부러져 있지만 충분히 복원 가능한 부재가 남아 있습니다.

 

갑사 부도, 삼층 석탑, 석조약사여래입상으로 미루어 판단하면 고려 중기 이전에 조성된 삼층석탑 부재로 생각됩니다

 

 

기단 중석

양우주 모각

 

 

기단 중석

 

 

탑신석

탱주 1주 모각

 

 

기단 중석과 탑신석

 

 

뒤집힌 옥개석

 

 

기단 갑석

 

 

기단 갑석

 

 

상층기단 갑석

상부 2단 굄 조출

 

 

상층기단 갑석

하부에 부연

 

 

상층 기단 갑석

 

 

탑신석

 

 

상층 기단 갑석

 

 

널 부르진 석탑 부재

 

 

기단 갑석

 

 

옥개석

 

 

옥개석

 

 

지상에 노출된 부재

발굴하면 더 많은 부재가 매장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상해보셨나요?

폐사지에 복원된 삼층석탑을...

 

우리의 몫입니다.

갑사의 책무이고요.

 

문경 봉정리 폐사지에 옛 부재 옥개석 하나만으로 복원된 삼층석탑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폐사지

적막, 공허, 옛님, 희열

소설 한 편 탈고 후, 뒷짐을 지고 한가히 배회하며 카타르시스에 빠져 봅니다.

 

후드득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것은 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짧은 가을볕을 즐기는 다람쥐의 분주한 묘기를 뒤로하고 청주에서 기다리는 님들을 만나기 위해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발걸음이 내내 무거웠습니다.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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