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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교동 향교. 비석군. 읍성

by 임병기(선과) 202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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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교동 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 17년(1741)에 조호신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1966년에 수리하였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이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자상을 들여와 모셨다고 전하며, 이후 지방의 각 군현에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문묘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과 제기고 등이 있다.(강화군청 홈에서 발췌)

 

 

수령 변장 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

 

 

외삼문

어둠이 내리고 문이 닫혀 까치발로 만족하였습니다.

내부에 비석( 노룡암. 老龍巖)답사가 주목적이었는데.

 

 

명륜당, 동, 서재

 

 

대성전

 

 

내삼문

 

 

교동 비석군

교동도의 비석을 모은 듯합니다.

 

 

하마비

 

 

유량루(庾亮樓) 

강화 읍성 남문

 

"읍성은 지방행정 관아가 소재한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한 성곽이다. 대개 읍성 안은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과 관리들의 업무 공간이다. 지역 주민들은 성 밖에 거주하며 비상시에 성안으로 들어가 방어전에 임한다. 교동읍성은 교동에 경기 수영을 설치한 때인 1629년(인조 7)에 쌓았다. 성의 둘레는 약 779m이고 동·남·북쪽 3곳에 성문을 세웠다.

 

세 문 모두 옹성을 설치했었다. 각 문에는 문루(門樓)가 세워졌는데 동문은 통삼루(統三樓), 남문은 유량루(庾亮樓), 북문은 공북루(拱北樓)라 하였다.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기도 했다. 1753년(영조 29)에 고쳐 쌓았고, 고종 대에도 성문을 다시 쌓았다고 한다. 동문과 북문은 어느 때 없어졌는지 확실치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에 폭풍우로 무너져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 부분만 남아있다. 1975년에 해체 복원했는데 문루는 다시 세우지 않았다"(강화군청)

 

늦은 시간이어서 전체를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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