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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고성군

고성...상원 마을 벅수골(껄)

by 임병기(선과)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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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상원마을

상원마을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벅수골을 여쭈었더니 골목을 가리키며 마을 뒤 들 가운데에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주셨습니다.

 

벅수골(껄.컬)

여러 자료에 벅수껄로 설명하고 있어 껄이 골의 사투리인지, 거리의 방언인지 불분명합니다.

답사 준비를 하면서 상원의 한자 표기가 上院이라고 짐작하고 역원(驛院)의 벅수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원의 한자 표기는 上圓이었습니다.

 

 

서낭당

지금은 마을 뒤편 들 중앙에 자리했지만 마을 앞으로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벅수골이 교통의 요지라고 생각되었으며,

자료 검색 중에 짐작이 맞았음을 알았습니다.

 

 

상원 마을의 유래와 환경

 400여 년 전 무계촌(茂溪村)에서 윤씨(尹氏), 박씨(朴氏)가 주축(主軸)을 이루어 마을을 형성(形成)하여 오다가 약 300여년전(숙종 8년)부터 마을이 퇴폐하여 현 위치인 이곳으로 이주(移住)하여 김해김씨(金海金氏)와 진양정씨(晉陽鄭氏)가 그리고 약 200여년전에는 무계촌(茂溪村)에 김녕김씨(金寧金氏)가 이주하여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마을 지세 거류면(巨流面)사무소 남쪽 해발 420미터 면화산(棉花山) 기슭에 상원(웃땀)과 무계촌(茂溪村) 정문걸의 산재마을을 합하여 상원마을을 형성(形成)하고 있으며 독장골에서 흘러내리는 무계천(茂溪川)의 넉넉하지는 못하나 수질(水質)이 좋기로 유명하여 마을의 간이상수도(上水道)로 이용하고 있다.

 

남으로 면화산(棉花山) 정상(頂上)을 경계로 산넘어는 통영시 광도면 황리(統營市 光道面 黃里)가 있고 동쪽은 하원(下圓)마을, 서쪽은 마동(馬洞)마을이, 북쪽은 용동(龍洞)마을과 당동(塘洞)마을이 접해있고, 동북간(東北間)에는 맑고 푸른 당동만(塘洞灣)이 동해 바다와 맞물려 있다. 서기 1914년 광남면(光南面)과 광일면(光一面)을 합면(合面)하여 거류면 신용리(新龍里) 2구로 현 상원과 하원이 한마을을 이루어 오던 중 1961년 행정구역조정으로 상원과 하원이 분동되어 상원마을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음. 거류면 지명 유래)

 

 

서낭당

거의 유래가 없는 배치로, 조산 3기와 벅수 2기를 모신 독특한 서낭당입니다.

당산목이 있으며 각각의 제단 앞에는 시멘트로 제단을 조성하였습니다.

 

 

각각의 조산은 상원(웃땀), 중원(중땀), 하원(아랫땀)으로 모셨습니다.

진 위(중앙)가 상원, 좌측이 하원, 우측이 중원으로 추정됩니다.

 

 

위글에서

예전에는 고통의 요지로 짐작했던 저의 추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료를 찾았습니다.

"조선조 광해군(朝鮮 光海君) 11년(서기 1619년)에 지금의 화당리에 남촌진이 생겨 통영(統營)을 통하는 한칸 육척(一間 六尺) 도로(道路)가 현 상원마을 뒷편을 통과하고 있는데 언젠가 벅수컬이 생겨 길 아래 위로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의 벅수와 길위의 2개, 길 아래에 1개의 둥근 돌탑을 쌓아 매년 정월 초하룻날(正月 一日) 상원·하원 마을주민들이 정성껏 동제(洞祭)를 지내고 있으니 이 탑을 이름하여 상원(웃땀), 중원(중땀), 하원(아랫땀)이라 하였다"(다음. 거류면 지명유래)

 

 

벅수(1)

중원(?) 조산 옆에 위치

 

2기 벅수에는 할머니 벅수 표기가 없습니다.

우리 전통 민속에서 벅수는 남녀 구분이 없었음을 보여 줍니다.

 

 

왕방울 눈

뭉툭한 코

이빨, 수염

 

무섭기는커녕 정겨운 모습입니다.

 

 

 

천하장군天下將軍

 

 

 

벅수(2)

하원 조산 옆에 위치

 

 

 

지하장군地下將軍

명문만 다를 뿐이며, 천하장군과 흡사합니다.

 

 

 

상원과 제단

 

 

상원

 

 

중원

 

 

중원(좌)과 하원(우)

 

 

하원

 

 

중원(좌)과 하원(우)

 

 

조산 3기

그리고

천하장군과 지하장군, 당산목

 

정월 초하룻날(正月 一日) 상원·하원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동제(洞祭)를 모셨는데...

 

 

서낭당

벅수와 조산

 

마을 풍농, 사악한 기운을 차단하는 벽사를 상징하며

동제를 모시던 제의 공간이었습니다.

더불어

통영으로 드나드는 길손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마을 신앙을 시나브로 잃어가고 있습니다.

 

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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