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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고성군

고성...옥천사 하마비

by 임병기(선과) 2020.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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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사 비각과 하마비

 

오늘은

청련암 철솥과 연대암 석조관음보살을 뵙기 위한 순례길, 그간 눈에 들지 않았던 하마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옥천사 성보박물관(2019년)

http://cafe.daum.net/moonhawje/DjZP/4546?q=%EA%B3%A0%EC%84%B1...%EC%98%A5%EC%B2%9C%EC%82%AC

 

옥천사 마애부도(2018년)

http://cafe.daum.net/moonhawje/DjZP/4428?q=%EA%B3%A0%EC%84%B1...%EC%98%A5%EC%B2%9C%EC%82%AC%EB%A7%88%EC%95%A0%EB%B6%80%EB%8F%84

 

옥천사 부도전(2017년)

http://cafe.daum.net/moonhawje/DjZP/3909?q=%EA%B3%A0%EC%84%B1...%EC%98%A5%EC%B2%9C%EC%82%AC%20%EB%B6%80%EB%8F%84%EC%A0%84

 

증 호조참판 안공 선경비(贈 戶曺參判 安公 善敬碑, 1922)

관리가 되지 않아 흉측스런 모습이며, 붉게 채색한 명문도 빛이 바랬습니다.

 

증 호조참판안공선경비 贈戶曺參判安公善敬碑

증 정부인영산신씨 贈 貞夫人靈山申氏

증 정부인전주이씨 贈 貞夫人全州李氏

 

배면(한국의 사찰문화재 참조)

子  商國 

女息 點順 佛名 順德華

壬戌閏五月十七日巳時 立

아들 상국, 딸 점순(불명 순덕화)이 1922년에 세움

(임술을 1922년으로 해석한 것은 한국의 사찰문화재 기록에 준함)

 

그런데, 의문이 증폭됩니다.

비석을 세운 주체가 사찰이 아니라 자식이며, 비명도 불망, 송덕비가 아니라 개인의 비석입니다.

또한, 호조참판 안선경은 2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증(贈)의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 전각의 관리 부실과 상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숨은 내력을 추적하면 스토리텔링 또는 단편 소설 한 편 탈고할 소재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비각과 하마비

 

왜 안선경 비각 앞에 하마비가 있을까요?

 

왕실과 관계가 있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며, 홈페이지 검색 결과  옥천사가 왕실의 복을 기원하는 축성전 전각이 있었던 원당사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마비는 본래 위치가 아님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축성전은 1985년 이건되어 조사전 현판을 걸었으며, 이후 축성전을 회향하였으나 천불전으로 사용된다는 사진만 보입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 현재 축성전 존재 유무는 언급을 피합니다.

 

하마비 下馬碑

 

신유 오월일 辛酉五月 日

신유년은 1742년, 1802년, 1862년, 1922년으로 추정

 

축성전과 관련된 내용 (옥천사 홈페이지)

-. 고종 25년(1,888). 동학군이 몰려와 절 외곽의 많은 전각을 불태웠다. 용운대사가 '이 절에는 주상의 수복을 비는 축성전이 있다. 더 이상 방화하면 역적으로 몰아 삼족을 멸할 것이다'라고 호통치자 물러나서 중심 전각을 지킬 수 있었다.

 

-. 고종 27년(1,890 ) '명산고찰에서는 왕실을 위해 기도를 올리라'는 교지가 내려오자 당시 경상도 관찰사 겸 진주 목사로 재직하던 박상규가 사재를 털어 축성전(祝聖殿)을 짓고 임금의 수복 안녕을 기원했다. 이때 고종으로부터 축성전 현판을 사액(賜額) 받았다.

 

한국의 사찰문화재.

옥천사축성전서문 현판 玉泉寺祝聖殿序文 懸板

玉泉寺祝 聖殿序文 大抵寺刹法宇之刱世 」 多有之此假衆 而自求多福之心也愿堂 聖殿之 」 刱世所稀 有此獨發忠義 君祝 之願也然則自 」 為 求 多福之心 君祝 之誠度長比重不可 (중략) 光緖十六年庚寅二月日

 

광서 16년은 1,890년으로  경인년(庚寅年)입니다.

 

위의 신유년 중 1,890년 전후는 1,862년과 1,922 년입니다.

동학항쟁 때에 용운대사의 일갈을 감안하면 1,890년 축성전은 신축이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으며 동학혁명 때 전소되었다는 가정이 성립됩니다.

 

또한, 1,922년 일제강점기에 축성전(祝聖殿)을 중건 또는 보수 후 하마비를 세웠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개인적으로 하마비 뒷면의 명문 신유년(辛酉年)은 1,862년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고종의 현판 사액(1,890년) 후 하마비를 건립했을 개연성도 틀린 가정은 아닐 듯합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사찰 하마비는 옥천사를 비롯하여 안동 용수사. 의성 지장사. 순천 선암사, 승주 송광사, 남해 용문사 , 홍천 수타사, 성주 관운사, 남양주 봉선사, 보은 법주사, 영천 은해사, 부산 범어사, 대구 파계사, 합천 해인사,성주 선석사(복원), 강릉 청학사(복원) 등이 있습니다.

 

또한, 사찰 경내의 벌목, 산소를 금지하는 금표가 있는 사찰은 안동 봉정사, 사천 다솔사,  원주 구룡사, 영암 쌍계사지, 대구 파계사, 안동 용수사, 문경 김용사, 인제 운흥사지, 예천 명봉사(복원)가 기억납니다.

 

우리 카페 회원들도 사찰 순례 시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길 권합니다.

 

2020.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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