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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고성군

고성...옥천사 성보박물관

by 임병기(선과) 2019.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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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석조아미타불.대세제보살.관음보살

 

옥천사는 이전에도 여러번 방문하였으나 오늘은 인연 짓지 못한 성보박물관을 들렸다.

 

 

옥천사범종 玉泉寺梵鐘

종신에 “건륭 41년 병신 8월 일 경상우도 진주 남면 연화산 옥천사 대종 개주기 … 구종본중육백근 신주첨금일백근 도편수 이만중 백예적(乾隆四十一年 丙申八月日 慶尙右道 晋州 南面 蓮華山 玉泉寺 大鍾改鑄記 … 旧鍾本重六百斤 新鑄添金一百斤 都片手 李萬重 白詣適)”이라는 주종기(鑄鍾記)가 남아 있어, 1776년 8월 경상도 진주 남면(현재 경상남도 고성군) 연화산에 위치한 옥천사에서 사용하기 위해 사찰에 유전하던 옛 종 600근에 철물 100근을 더하여 주종장 이만중과 백예적이 함께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연곽 아래의 넓은 빈 공간에 “대정 5년 10월 일 중수기 … 편수 임화순(大正五年十月日重修記 … 片手 林化㥧)”이라는 명문이 추가로 기재되어 있어 1916년에 수리 작업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천판 위에는 두 마리 용으로 구성된 종뉴(鍾鈕)를 부착하였는데, 음통(音筒)이 없고, 용의 머리와 비늘의 표현은 매우 소략한 편이다

 

 

상대에는  범자(梵字)를 2줄로 새겼다.

 

 

4개 연곽

 

 

보살상

 

 

명문

 

 

하대

덩굴문을 새겼다.

 

 

옥천사 동종은 그 동안 18세기 중·후반을 대표하는 일반인 사장(私匠) 출신 주종장 이만중이 보조 장인 한 명과 함께 제작한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도편수 이만중, 백예적’이라 한 주종기의 내용에서 백예적을 보조 장인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이만중과 백예적은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만중은 경상도 이씨 일파(慶尙道 李氏一派)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1767년 문경 대승사동종(현재 불명, 『대승사지大乘寺誌』)부터 1788년 무주 안국사동종까지 약 21년 동안 총 6점의 동종을 제작하였다. 그는 대체로 50~70㎝ 크기의 동종을 보조 장인 없이 단독으로 제작하였다.

 

반면에 백예적은 주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이만중 보다 7년 빠른 1760년 목포 달성사동종 제작을 시작으로 1776년 고성 옥천사반종까지 약 16년 동안 5점의 동종과 1점의 금고를 제작하였다. 그도 주로 50~70㎝ 크기의 작은 동종을 제작하였지만, 이만중과는 달리 보조 장인 또는 다른 유파의 주종장과 함께 작업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주종장의 명칭은 도편수 이만중과 백예적의 순서로 되어 있지만, 동종 제작은 이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당시 두 인물이 동일한 시기에 자신만의 작품 양식을 유지하며 활동하였고, 주요 활동 지역도 경상도와 전라도로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고성 옥천사반종 제작에 참여한 두 인물은 모두 우두머리 장인[수장(首匠)]으로 판단되며, 이렇게 독자적 활동을 진행하던 두 인물이 하나의 동종을 같이 제작한 이유는 동종의 크기가 100㎝가 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종뉴가 망실되기 이전에 100㎝가 넘는 크기로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1788년 무주 안국사동종의 경우, 주종장 이만중과 함께 대구 출신 권동삼(權東三)이 도편수로 참여하고 있어 수장의 공동 작업을 증명해 준다.동종의 양식에서도 공동 작업의 양상이 엿보인다. 천판 밑에 부조된 원권의 범자, 얕은 당초문이 장식된 사다리꼴 연곽, 연곽 사이에 장식된 합장형 보살 입상, 그리고 종구에 표현된 연화당초문 등 종신을 장식한 도안의 구성은 이만중이 제작한 보은 법주사동종(1785년), 무주 안국사동종(1788년)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다. 반면에 둥글고 높은 천판은 백예적이 제작한 목포 달성사동종(1760년), 완주 안심사동종(1760년), 함양 백운암 동종(1767년)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옥천사임자명반자 玉泉寺壬子銘飯子

고려이십삼왕환갑지년임자사월십이일재어경사공인가중주성지리산안양사지반자(高麗二十三王環甲之年壬子四月十二日在於京師工人家中鑄成智異山安養社之飯子)’라는 명문이 있어, 1252년 고종의 환갑을 기념해 만든 것으로, 지리산 안양사에 봉안되었던 반자임을 알 수 있다.

 

앞면은 막혀 있고 뒷면은 비어 있는 전형적인 반자 형식으로, 앞면은 굵은 동심원으로 4등분하고 중앙에 7개의 연자를 배치한 다음 윤곽을 따라 2줄의 선을 돌렸다. 그 주위로는 중엽의 연꽃이, 바깥 둘레에는 쌍구형의 당초무늬가 유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측면의 중앙에도 선이 돌려져 있고 그 위에는 3개의 고리가 달려 있다(다음 백과에서 발췌)

 

 

 

해중고도 海中孤島

1965년.청담스님

 

 

고종 초기에 암행어사를 지낸 박이도(1825-?)가 옥천사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부처님은 반드시 그를 도울 것(佛必隣哀)이라는 내용의 현판을 광서 원년(고종 12년, 1875)에 판각한 현판이다.

 

 

바라.조선후기

 

 

위패

 

 

옥천사향로 玉泉寺香爐.181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9호. 향로 주위를 돌아가면서 네 곳에 화문원권(花文圓圈)을 그린 후, 그 안에 봉황문(鳳凰文)을 새기고 그
사이에 빈틈없이 은입사(銀入絲)하여놓았다.

 

‘宜寧修道寺(의령수도사)’라고 새겨진 명문(銘文)이 있고, 대좌의 다리 부분에는 은입사의 조식(彫飾)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점각(點刻)의 ‘嘉慶二十一年丙子四月晉州玉泉寺施主沾油契化主普沾呂性.(가경21년병자4월진주옥천사시주첨유계화주보첨려성)’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향완(우)

 

 

금강 보살도

 

 

금강보살도

 

 

나한상

17세기 초 색난의 작품으로 추정

 

 

 

 

 

 

 

암막새

 

성보박물관

돌아와서 확인하니 많은 불화를 놓치고 왔다.

 

수장고 아니면 별도에 전시실이 있는 것인지.

 

 

금고

자방루에 위치.조선후기

 

 

월파당 부도

동행한  분이 아이스크림형 부도라고 칭하였다.

평생 기억에 남을 듯

 

영동 심원사지, 평택 약사사의 연봉형 부도와 더불어...

 

나는 FIFA 월드컵 우승배

분명 월파탕 부도를 모방했다고 생각했었는데.

 

 

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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