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경주시

경주...흥륜선원 석불좌상

임병기(선과) 2019. 7. 22.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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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륜선원

그러고보니 첫 발걸음입니다.

특별한 석조문화재가 부재지만 답사객 자격의 큰 결격 사유가 분명합니다.


흥륜사지

"흥륜사 興輪寺는 신라 최초로 왕에 의해 건립된 국찰國刹이다. 이곳은 신라 칠처가람七處伽藍 중 하나인 천경림天鏡林에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創建했다고 전해지나 명확하지 않다. 또한 창건과 관련된 연혁은 여러 문헌에서 보이는데, 삼국유사에는법흥왕 法興王 14년(527)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진흥왕眞興王 5년(544)에 완공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명에 대해 대왕흥륜사 서는 ‘大王興輪寺’라 칭하고 있는데, 법흥왕이 사찰의 주지가 되면서 명명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는 흥륜사와 관련된 많은 고사 및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흥륜사 금당에는 신라 불교 전개에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들 10명의 소상을 모셨다고 한다. 또한 549년 중국 사신과 승려 각덕覺德이 부처의 사리를 가져왔을 때는 왕이 흥륜사 앞길에서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흥륜사의 높은 사격을 말해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636년에는 선덕왕이 병들자 흥륜사의 승려를 불러 치유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로 보아 흥륜사는 창건 이래 신라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삼국사기』에는 흥륜사의 문이 저절로 무너지고 남문에 벼락이 쳤다는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경명왕 대인 921년에는 반군에 의해 사찰에 화재가 나 정화靖和와 홍계弘繼 두 스님이 흥륜사를 다시 일으켰다고 하며,이때 보현보살상을 봉안하여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후 고려시대 흥륜사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세한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1244년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인이 쓴 흥륜사대종명병서興輪寺大鍾銘 幷序」에 의하면 불타버린 절터에 다시 불당을 세우고 범종을 주조하였다고 한다. 이때 보수는 하였지만 이전과 같은 규모의 가람이 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찰은 매월당집『梅月堂集』에흥륜사지 “興輪寺址”라 기록하고 있어 15세기 말 이전에 이미 폐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 사지가 있는 사정동 일대에는 전 흥륜사傳 興輪寺, 영흥사永興寺,영묘사靈廟寺 등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경주시 사정동 281-2번지 일대는 ‘흥륜사지’로 지정되어 있으나, 사역내에서 영묘지사“靈廟之寺(김태중 소장)”, 대영묘사조와“大令妙寺造瓦(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와편들이 수습되어 이곳을 영묘사지로도 추정하고 있다. 흥륜사 및 영묘사의 위치비정은 문헌과 발굴조사 내용, 명문 와편의 발견을 통해 근래에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흥륜사 서쪽상에 교량인 금교金橋가 있고, 동쪽에는 미추왕릉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마을 동쪽 2리에흥륜사가 있다고 전하고 있고, 영묘사는 경주부 서쪽 5리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금교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없으며, 미추왕릉의 위치 또한 명확하지 않다.


영묘사는 선덕여왕 4년(635)에 흥륜사와 같은 국찰로 창건되었다고 하며,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이 존속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영묘 사에 있던 성덕대왕신종을 남문 밖으로 옮겨갔다고 기록되어 있어, 17세기까지도 영묘사가 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헌상으로는 그 위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한편, 1932년 일본인 학자 대판육촌大坂六村는 현 경주공고 일원을 조사하던 중 ‘신라의 미소’로 유명한 인면문 와편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또한 현재 경주공업고등학교 운동장과 서편 교사를 신축할 당시에 대규모 건축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때 수습된 유물들 중 6세기 와편이 포함되어 있어, 초기 신라가람이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후 발굴조사에서는 흥륜사, 영묘사의 위치를 명확히 비정할 수 있는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최근 2011년 경주고등학교 일원에서 흥“興”명 와편이 발견됨에 따라, 경주공고 일원이 흥륜사 혹은 영흥사와 관련된 사지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많은 연구자들은 이곳이 흥륜사지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또한 2012년도에 조사한 본 연구소의 자료에서도 경주공업고등학교 일대를 흥륜사지로 추정하고 있다."(문화재청/한국의사지)(한문 독해는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얼굴무늬 수막새(傳 흥륜사지)

 

 

경주박물관 이차돈 순교 석당

 

 

경주 교동 12지상 석등(傳 흥륜사지)

 

 

경주박물관 수조(傳 흥륜사지) 

 

 

흥륜선원 석불좌상

대웅전 옆 위치.


대좌와 광배는 망실

가슴 위로는 만행을 떠나 보내고 먼 훗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수인도 알 수 없으며

무릎 위에는 의문이 희미합니다

두 무릎 사이로 빠져 나온 대의자락도 방향을 잃었습니다.


일견

우단편견의 법의로 생각되며, 무릎이 높아 안정감을 주는 불상입니다.

흥륜사에 향화가 이어질 시기에는 사라벌 뭇 보살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부처님 입니다.


 

 

 

옆모습


 

뒷모습


 

 

 

 

  


이차돈 순교 석당기

 


배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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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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