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영월군

영월...의호총

임병기(선과) 2019. 6. 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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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호총

주천면 신일리 148

 

 

우리나라에는 주인을 구한 의로운 소와 개의 무덤인 의우총義牛塚, 의구총義狗塚은 여러 곳에 전합니다.

하지만, 의호총義虎塚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무덤과 비석을 갖춘 의호총

 

 

의호총비義虎塚碑

 

 

계해 칠월 일 인순영분부립癸亥 七月 日 因巡營分付立
고금호사사하 故今(虎)士 師夏

강희 경자 천붕유호종상 康熙 庚子天崩有虎終喪 .
삼일이사 三日而死

 

숙종 승하 후 3년 상을 치른 후 죽은  금처사와 의로운 호랑이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1743년에 순영의 분부에 비를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한국금석문종합영상정보시스템의 홈에는 호(虎)로 등재되어 있어 처(處)로 판독한 영월군청 등의 기록과는 달리 금처사 이야기는 누락되어 있습니다.그리고, 비석을 세운 시기도 숙종 승하 후 3년 상이 끝난 계묘(癸卯)년이며, 계해(癸亥)년은 오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영월지방에 구전되는 금처사와 호랑이 전설(영월군청)

 

"금산 밑에 살던 금사하라는 이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상을 당한 후 어머니마저 병이 나서 백방으로 약을 구하여 봉양하여 왔는데, 갑자기 위중하므로 급히 약을 지어와야 했다. 약방은 강 건너 주천에 있어서 배를 타고 건너야만 했다. 마침 장마가 져서 배를 붙이지 못하자 금효자는 초조하고 황급하여 어쩔줄을 몰라 울면서 강가를 오르내리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는 동안 해는 져서 어두운데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금효자가 급한 마음에 “어머니 병환이 위중하여 강을 건너가서 약을 지어다 드려야 하겠으니 강을 건네주지 않겠느냐.” 하며 하소연을 하니, 그 호랑이가 앞발을 숙이며 등에 타라는 시늉을 하기에 금효자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고 약방에서 약을 지어와 그 약으로 모친의 병을 낫게 하였다.

금효자는 또 아버지의 산소에서 3년간 시묘를 살았는데 정성이 지극하였으며, 산골묘소에서 혼자 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전에 강을 건네주던 호랑이가 동무하여 주었다. 그는 호랑이와 친숙하여져서 한집안 같이 의지하고 지냈다. 금효자는 아버지의 3년 시묘가 끝나기도 전인 1720년에 숙종대왕이 승하하여 국상을 맞게 되었다.

충성심이 남다른 그는 베옷입고 방갓 쓰고 매일 망산(주천의 남쪽 강건너에 있는 산봉우리)에 올라가서 서쪽 궁중을 향해 망배하며 3년상을 치렀는데 그 호랑이도 함께 망배하며 행동을 같이 하였다. 국상을 3년을 마친지 3일후에 그 호랑이는 금효자집 마당에 와서 엎드려 죽었다.
금효자는 죽어가는 호랑이를 끌어안고 통곡하다가 마침내 호랑이가 죽자 부친의 산소 옆에 묻어주었다. 그 후 그가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마다 호랑이가 꿈에 나타나 일러주므로 가문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1743년 강원도 순영 중군이 이곳에 왔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호랑이 무덤에 비석을 세워 주라고 명하여 호랑이가 죽은지 23년만에 이 비석이 서게 되었다.

또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호랑이 제사를 지내주었다. 이 소문이 조정에 알려지자 금산을 중심으로 사방 10리를 금처사에게 사패전(賜牌田)으로 하사하여 호랑이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그런데 약 120년전쯤에 욕심많은 강원감사가 와서 그 사패전을 몰수하여 팔아버린 후부터는 호랑이 제사도 끊기고 말았다고 전한다."

 

 

의호총 옆

호랑이와 금처사의 전설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좌측 전봇대 뒤로 보이는 낮은 산이 망산으로 철종태실지와 빙허루가 있고

주천강 건너편이 요선정 마애불이 밤마다 마실 나온다고 신경림이 노래한  주천 읍내입니다.

 

201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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