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용암사 아침 이른 시간은 역광 하지만 마애여래입상을 뵙기에는 가장 좋은 타이밍이지요
요즘 답사 동선의 옛님 거의 대부분 옛인연입니다. 오늘도 12년전을 되새기며 마애불과 쌍탑을 찾아 왔습니다.
정감있는 옛글로 대신합니다. 대웅전
아미타삼존 후불탱은 목각처럼 보입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대웅전에 주불로 봉안된 불상 입니다. 복장(腹藏)에서 1651년(효종 2)경상도 문경 오정사에서 제작된 다라니경이 발견되었으나, 불상은 그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합니다. 나발,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었으며, 이목구비는 단정하 고개를 약간 숙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지닌 여래상입니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고, 법의는 통견, 하품중생인을 결하고 있습니다. 법의는 통견이며 길상좌를 취하고 있습니다.
신중도.1955년
마애여래입상 마의태자상으로 회자되는 불상입니다. 우리 민속신앙에서는 한을 품고 죽은 인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사례가 도처에 있습니다. 마의태자,최영 장군,단종대왕,신립 장군, 임경업 장군... 이제는 햇볕에 드러난 정사 보다 달빛에 물든 야사가 더 좋아지는 연배가 되었습니다. 추억 반추가 잦은 것도 그러하고.
특별한 문양이 없는 주형거신광배, 연화좌위에 모셨습니다. 머리위에는 돌출된 바위가 보개처럼 느껴집니다. 상호 부분은 고부조, 불신은 저부조로 새겼으며, 소발, 육계가 높고 눈은 반개하였고, 코는 우뚝하고 도톰한 입은 다물었습니다. 귀는 길고, 삼도를 표현하였으며, 법의는 통견, 옷주름이 무릎 아래까지 U자형으로 흘러 내렸고, 군의자락은 발양쪽으로 펼쳐저 있으며 시무외인,영원인 수인을 결하였습니다. 두발은 연화좌위에 불신과 일석으로 새겼습니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한 석탑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려시대에 조성한 동서삼층탑과 동시대 마애불일 가능성은 없는지요? 붉은 색조를 띤 것은 채색의 흔적 보다는 암질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애불을 뵙고 쌍탑으로 향하는 길의 바위
혹 마애부도 여부가 궁금해 사면을 살폈으나 사리공은 없었습니다.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 사진 작가이었다면 작품을 건지었을텐데.
동탑.서탑 상륜부에서 알 수 있듯이 동탑이 약간 높고. 서탑은 기단부 일부와, 2.3층 탑신석을 후보하였습니다 기단 결구법, 상륜부 부재를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으며, 상층기단 갑석에 부연을 생략하였고 옥개석 물매는 깊고 3단 층급받침을 표현하였습니다. 탑신석은 초층탑신석을 높게, 2.3층의 체감은 거의 없으며 일석의 탑신석에는 양우주를 모각하였습니다. 고려시대 자연 암반 위에 산천비보 목적으로 조성한 대표적인 석탑으로, 다른 탑과 달리 쌍탑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동탑
서탑
다시 찾을 때는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2019.04.13 |
아래는
2007년 글
옥천 용암사는 진흥왕 재위시 의신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오는 법주사 말사이다. 절부근에 용모습을 닮은 바위에서 유래한 사찰명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 말살책으로 파손되어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의신조사의 행적은 의신조사가 법주사 창건시에 흰노새에 불경을 싣고 와서 머물러 법보로 모셨다는 뜻에서 법주사로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용암사에서 내려 본 옥천 모습이다. 홀로 지친 나의 마음처럼 하늘도 흐리다.
쌍탑에서 바라본 용암사. 산지가람의 특징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벽면에 심우도가 그려진 대웅전-팔상도가 그려진 천불전-산신각-마애불이 층층이 자리하여 자연스럽게 참배 동선을 유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마애불을 친견할 수 있다. 건축적인 고려인지 모르겠지만 전각의 크기도 점점 줄어든다.
전국 여느사찰 산신각이 불교와 민간신앙의 흡습 현상이지만 사찰경내에 조산탑은 처음 본다. 물론 부안 내소사에는 당산목도 있다. 조산탑 옆과 사찰 곳곳에 한개의 돌에 보살 이름을 새긴 비석이 여럿 보여 의아스럽다. 비보 목적인지 민간신앙과 합동 기도처였는지 궁금하다.
용암사에서 가장 높은 바위벽에 위치한 마애불은 얕은 감실속에 서 있다. 붉은 흔적은 초기 석불 채색 흔적인지 붉은 바위색인지 분명치 않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처럼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주는 석불로 널리 알려져있는 마애불은 마의태자상이라고 한다.
연꽃대좌 위에 양발을 벌리고 서 있으며, 삼도, 소발, 긴 귀, 가늘고 긴 눈, 작은 입, 가는 코, V자형 규칙적인 옷주름이 보인다. 환하지 않은 얼굴이며 수인은 명확하지 않다. 마의태자상이 아니라도 도식적인 형식으로 미루어 신라말 고려초 불상이라 알려져 있다.
쌍삼층석탑은 2기단에 3층 탑신을 올린 다소 갸날프보이는 고려시대에 탑으로 추정한다. 석탑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간략화하는 현상이 보이지만 이 석탑은 양식적인 면보다는 건립의 목적과 위치의 선정에 있어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내가 자주 답사기에 피력했듯이 탑과 금당이 일직선상이 아닌 경우는 폐사, 금당터의 이전, 다른 곳에서 석탑을 이건과 더불어 가장 많은 이유가 산천비보사상에 의한 경우이다. 용암사 쌍탑과 관련 상세히 설명된 글을 옥천 군청 홈페이지에 가져왔다.
둘째, 고려시대에 건립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은 모두 단탑(單塔)임에 비해 이 석탑은 쌍탑(雙塔)이라는 것으로서,용암사쌍삼층석탑은 조사결과 정확히 동.서방향을 유지하고 있고, 양탑의 양식이 유사하고, 지대석 하면에 물려 있는 암반의 형상을 보아 이 탑은 본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본래부터 쌍탑의 의도로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 중에 쌍탑으로서는 처음 확인되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쌍탑에서 한참을 머물다 부처님께 인사 올리고 바라본 용암사 전각. 처마만 보이는 3칸 대웅전-2칸 천불전-1칸 산신각이 참배객의 시선을 유도하고 있다.
저 산길 끝 에는 옛님의 숨결(http://cafe.daum.net/moonhawje)
2007.0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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