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관음암지 부도전 문화재청 발간.한국의 사지에는 하관음암지 부도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두 부도가 언급되어 있어 조성시기가 분명하다. 사진 아래 부재가 흩어진 곳이 산사면에 굴러 떨어진 정관대사(1533~1608)부도 자리이며, 위쪽 부도가 산중일기에 당호가 떨어져 나갔다고 말한 부도이다. 정시한 산중일기 1686년 10월 08일.대암암
(상략) "식후에 청룡대(靑龍臺)에 올라갔다가 부도대(浮屠臺)로 갔는데, 여기는 바로 정관대사(靜觀大師)의 탑이 있는 곳이다.,또다른 탑 하나가 있으나 글씨가 떨어져나가 알아 볼 수 없다, 중은 노장이 뒤따라와서 함께 오랫동안 주위를 조망하다 돌아왔다. 아래 석조부재가 남아 있는 터가 정관대사 부도 자리이다.
석종형 부도 지륜스님께서는 이 부도가 정관대사 부도 이전에 조성된 탑으로 추정하였다. 일견 정관 대사 이후 부도로 보이지만, 정시한이 순례한 1686년에 이미 당호가 훼손되어 있었고, 또한 상식적으로 뒤쪽에 자리한 부도가 앞쪽 부도 보다 선대의 부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까?
탑신에 비해 기단부가 튼실한 것은 약간의 경사가 있는 부도 위치 때문인가? 탑신과 연봉형 보주를 일석으로 조성하였다. 조성시기는 최소한 1686년 이전이며, 정관대사 부도 보다 빠르다면 1608년 이전에 조성되었을 것이다.
기단부 탑신
보주
이 부도도 넘어진 상태로 있었으나 지륜스님을 비롯하여 법주사 학인스님들이 세웠다.
정관대사탑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는 부도가 여기에 있다고 기술하였다. 즉 산사면으로 굴린 것은 그 이후이다. 부도 아래쪽에 팔각 대좌편이 남아 있었다.
산사면
나무의 수령으로 미루어 판단컨데 부도를 경사면으로 굴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하다. 정관대사탑 靜觀大師塔 종형 부도로 보주와 일석이며, 조성시기가 분명하다. 탑신석 하부에 사리공이 없어 기단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탑신에 당호(靜觀大師塔)가 새겨져 있으며, 상부의 문양은 독특하다, 원형 받침위에 연봉형 보주를 올렸다. 정관대사는 말년에 속리산 복천암,대암암에 주석하였다는 자료로 판단컨데 부도전도 대암암 부도전일 가능성를 배제 할 수 없다. 정관 일선 靜觀一禪(1533~1608) 사명유정(四溟惟政),편양언기(鞭羊彦機),·소요태능(逍遙太能)과 더불어 서산대사의 4대 제자의 한 명이다. "연산(連山: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출신. 성은 곽씨(郭氏). 호는 정관(靜觀). 휴정(休靜) 문하의 4대 문파 가운데 하나인 정관문(靜觀門)의 창시자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선운(禪雲)에게 『법화경』을 배우고 그의 법화사상(法華思想)을 전수하였다. 그 뒤 법화신앙에 심취되어 『법화경』을 부지런히 독송하였고 그 공덕의 뛰어남을 역설하는 한편, 시주를 얻어 3,000권의 종이를 마련하고 1,000부의 경전을 인출하여 보시(布施)하는 등 경전 유포에 큰 공훈을 남겼다. 한때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 머물렀고, 만년에 휴정(休靜)의 강석에 참학(參學)하여 그의 심인(心印)을 이어받았다. 1608년 가을에 병을 얻어 덕유산 백련사(白蓮社)에서 입적하였다. 그는 임진왜란 중에 승려들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의승군(義僧軍)으로 나아가 전쟁에 참여함을 보고 승단(僧團)의 장래를 깊이 걱정하였고, 전쟁에 참여하는 일이 승려의 본분인가에 대하여 개탄하였다. 또한, 유정(惟政)에게 글을 보내 전쟁이 끝났으니 한시바삐 관복을 벗고 승가(僧家)의 본분을 다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철저한 수도승으로서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경전을 인출하거나 왜란에 휘말려 있는 승단을 깊이 걱정한 점은 또 다른 현실참여를 나타내고 있다. 저서로는 『정관집』이 있다."(다음백과사전)
대사탑 大師塔
정관 靜觀 희미하지만 육안으로 확인된다.
탑신 상부 문양은 연화문 인가?
(덕유산 백련사.정관대사 부도) 탑신에 정관당 일선탑(靜觀堂 一禪塔),대좌에 만력 37년건(萬曆三十七年建)’ 명문이 새겨져 있다. 조선 광해군 원년(1609)에 세운 부도이다. 부도전에서 조망되는 문장대
법주사 방향 능선 버팀목에 의지한 선사의 부도 저대로 방치해야 할까? 이 좋은 날에 가슴 한켠에 먹먹함이 밀려 온다. 그리울 테지 아주 많이 많이 봄날이 다가오면 더더욱... 그리고 이곳 까지 험한 산길을 마다 않고 안내해주시고는 바람처럼 산속으로 사라진 지륜스님 고맙습니다. ()()() 2019.03.28 |
'충청북도 > 보은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은...속리산 여적암 마애삼존불.마애십육나한상 (0) | 2019.04.02 |
---|---|
보은...속리산 사내리사지(19) 마애여래좌상 (0) | 2019.04.01 |
보은...속리산 대암암지(중관음암지) 부도.석조부재 (0) | 2019.03.31 |
보은...속리산 중사자암 (0) | 2019.03.31 |
보은...속리산 사내리사지(1) 석불입상 (0) | 2019.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