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안군

함안...주리사지 사자삼층석탑.오층석탑 부재

임병기(선과) 2019. 3.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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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사지 主吏寺址

여항산 자락에 자리했던 주리사의 창건과 폐사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신증 동국여지승람, 함주지 등의 문헌에 사찰이 운영되는 기록되어 있으며, 17세기에 건립된 함안향교 대성전에 주리사지에서 반출된 석탑재를 비롯하여 석탑부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여지도서의 폐사된 기록으로 미루어 18세기 중반 이전에 향화가 끊겼음을 알 수 있다.

 

 

주리사지 삼층석탑

본래 오층석탑으로 전하지만 불분명하다.

일제강점기 대정육년도고적조사보고(大正六年度古蹟調査報告)에 의하면 주리사지에서을 함안군청으로  이후  면사무소로 이전했다가 광
복 후 함성중학교 교정에 자리 잡았으며 2005년에 수리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2005년 복원 전 사진(출처/불교신문)

복원된 사자석탑 옆 5개 옥개석과 뒤죽박죽 올려져 있다.


 

사자상.2,3층 옥개석과 탑신석 노반만 본래 부재이다.

상층기단부에 4사자를 배치하였으며 탑신석에는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옥개석 층급받침은 4단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주리사지 외에 사사자석탑은 구례 화엄사, 제천 사자빈신사지, 홍천 괘석리에 있으며 북한지역 금강산 금장암지에도 있다고 한다.



구례 화엄사(2008년)


 

홍천 괘석리(2006년)



제천 사자빈신사지(2014년)



회양 금장암지(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주리사지


사자상(1)


 

사자상(2)


 

사자상(3)


 

사자상(4)



사자상 측면

 


사자상 목 갈기

 


탑신과 옥개석 층급받침

탑신의 양우주

각형 4단 층급받침, 절수구는 생략되었으며, 추녀의 반전도 있다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후기로 전한다.

 


석탑부재

주리사지에서 옮겨 온 석탑부재로 추정한다.

사자석탑이 복원되기 전 이 옥개석과 뒤섞여 있었다고 한다.

 


옥개석 크기로 미루어

사자석탑과 별개 석탑옥개석으로 추정된다.


옥개석 낙수면 물매는 급하고 상부에 각형 2단 굄을 조출하였고 층급받침은 위로부터 3(4)*4*4*5*5이다.

풍탁공이 남아 있으며, 절수구는 생략되었다.

 


풍탁공

 


옥개석 옆 석탑부재

5개 옥개석과 매칭이 되지 않은 부재로 다른석탑의 부재로 추정된다.

하층기단 부재(1)

저석과 중석이 일석으로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하층기단 부재(2)

 


상층기단 면석(?)

 


탑신석

 


 


주리사지에서 옮겨 간 석조부재. 함안향교 석등재



주리사지에서 옮겨 간 석조부재. 함안향교 석탑 면석

향교에는 위사진 외에도 여러점의 부재가 있다.



함안박물관. 석등부재 외


 

복원 되면 좋을텐데.


그아저나


10년 후에 다시 찾을 수 있을까?


2019.03.09 

 

아래는

2006년의 글이다

 

 

자주 만나는 님이 오래전에 물었다.

선과님! 구례 화엄사, 제천 사자빈신사지, 홍천 희망리 외에 사사자 기단이 있는 탑 아세요?

또 있는교?

함안 주리사지 탑이 있는데 사자는 면사무소 창고 속에 있어 볼 수 없답니다.

.

.

그 님이 바로 오늘 동행한 광해대왕이다. 이제 몇 번을 헤매이고도 찾지 못했던 선산 주륵사지도 광해대왕과 함께 할 날을 기다린다.

아니 어쩌면 충청도 산골에 은둔하면서 비지정 문화재  리스트를 내놓고 나를 부를지도 모르겠다.

 

함성 중학교 비림

 

함안면 함성중학교 교내에 자리한 공덕비, 선정비는 세월이 흘러도 말없이 함안 군청소재지는 가야읍이지만 근세까지 함안면이 고을원이 있었음을  대변하고 있다.

 

양반 고을 반열에 자리매김하는  내고향 성주에는 오래전부터 ---- 경부선 철도 선로를 김천에서 성주를 거쳐 대구로 부설하려든 최초계획이 향리의 기운이 쇠약해 지는 것을 우려한 양반네들의 데모 때문에 왜관으로 변경 가설되어 성주는 발전을 멈추었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함안면도 경전선이 유림의 저지로 가야로 부설되어 함안면은 고을의 변방으로 남게 되었다고 하니...

 

널부러진 주초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과에 대한 논의는 끝도 없겠지만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버려져(?) 있던 문화재를 학교로 옮겨오도록 한 정책은 박수를 받을만 하다. 그 정책이 없었다면 현재 전국 교정에 서 있는 문화유산은 소리없이 우리 곁을 떠났을 것이다.

석탑 옥개석, 몸돌 면석

 

저렇게 큰 옥개석은 어디서 옮겨왔을까? 맨아래와 위층은 균형도 맞지 않을 뿐더러 옥개석 받침은 위로 올라갈 수록 줄어드는데 맨아래 받침 숫자가 3개다.

석탑을 상상해보아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옆에 있는 몸돌 면석과 매칭도 전혀 안되어 답사내내 몸이 가볍지 못했었다.

 

 

복원전 사진 / 출처: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답사 후 자료를 찿아 보았더니 기단부의 사자 2마리 도난 후 붕괴되어 이런 모습으로 방치했다. 도데체 이게 뭔가?

기가 막힌다. 차라리  무너진대로 두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위의 사진은 3층으로 복원후 남은 옥개석을 쌓은 모습이다.


주리사지 사사자 석탑

 

 3층인지 5층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3층으로 복원한 석탑이다.

함안군 여항면  주리사지에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함안면사무소로 이전하였다가  해방 후 다시 함성중학교에 옮겨온 탑으로 이제 그나마 제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사자와 2,3층 몸돌, 옥개석, 노반만 본래 부재이다. 사자는 불법 수호측면에서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겠지만  '허균'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허균은 <사찰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돌베개, 2000)에서 “네 마리의 사자가 각각 다른 정도로 입을 벌리고 있는 데에는 나름의 오묘한 불법이 서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사자가 입을 크게 벌려 치아가 드러난 상태를 산스크리트어(Sanskrit; 梵語)의 ‘A'(아) 발음으로, 그것보다 약간 작게 벌린 것을 ’U'(우) 발음으로, 그것보다 작게 벌린 것을 ‘M'(훔) 발음으로, 마지막으로 완전히 꽉 다문 상태는 ’M'(훔) 발음 뒤에 뒤따르는 ‘침묵’ 상태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AUM'(아우훔) 소리가 고대 인도 브라만교(敎)의 경전인 베다의 찬미와 주문의 신성한 언어로부터 왔다”며

1) “‘A'는 경험의 세계와 함께 있는 의식의 상태이고,
2) ‘U'는 꿈의 미묘한 형태에 대한 경험과 더불어 꿈꾸는 의식의 상태이며,
3) ‘M'은 꿈꾸지 않는 깊고 잠잠하고 미분화된 의식의 자연적 상태이고
4) ‘A'와 ’U'와 ‘M' 뒤에 오는 침묵은 궁극적인 신비의 세계이며, 그곳에서 선험적인 법성(法性)과 일체가 되어 법성이 자아로서 체험되는 단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그는 “‘AUM'(아우훔)의 발음과 침묵은 존재의 전체에 대한 의식을 발음으로 상징화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사자 기단


1999년 대구지검은 대규모 문화재 도굴단 검거를 발표 했다.  주리사지 사자 2마리는 비오는 야밤에 크레인을 동원하여 훔쳤다고 한다.

돌아온 사자는 가지런한 발, 통통한 몸집, 타원형의 무릎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모셨을 비로자나불(?)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하다.


사자 갈기

 

갈기를 세우고 포효할 날은 언제쯤일까?

 

2006.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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