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함안군

함안...무릉산 장춘사

임병기(선과) 2019. 3. 14. 06:41
728x90

 

 

 

장춘사

오류가 보이지만 아래에 2002년의 글과 2006년 사진을 그대로 옮겨왔다.

 

예전에는 꼬부랑 산길로 진입하였지만

넓은 임도(?)를 새롭게 조성하여 접근이 용이해졌다.

 

 

사립문은 여전히 정겹고.

 

 

오붓한 일주문

 


대웅전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정.측면 3칸*2칸 전각이다

정면 창호는 빗살이며, 측면은 띠살문이다.

 

 


측면과 후면 모서리 상부에 광창을 설치했다.

 

 

 

 

석조석가여래삼존.

보관은 후보물이며 문수,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조각승 도잠의 작품이다.

"도잠은 응혜와 승일 밑에서 작업을 하였으며, 발원문과 사적기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1620년을 전후하여 태어나 1650년부터 1660년대까지 보조화승으로 불상을 제작하였다. 그는 1670년대 용천사 불연의 제작이나 1688년 완주 대원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등을 수화승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아 50대부터 불상이나 공예품 제작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남아 있는 도잠이 제작한 작품들은 불상과 불연 등이며 재료는 거의 나무로서, 불석제는 장춘사 불상이 유일하다."(문화재청)


 

칠성도.1907년

 

 

신중도.1907년

 

 

약사전



석조약사여래좌상

대좌는 후보물,주형거신광배와 불신을 한 돌로 조성하였으며 개금한 상태이다.

나발, 육계는 크다. 삼도는 없으며 법의는 우견편단, 백호를 새기고, 귀는 길고 입과 코는 작다.

길상좌, 항마촉지인이며 오른손에 약함을 들고 있다.

주형거신광배에는 두광,신광을 구획하였고, 내부에는 연화문, 외연에는 화염문을 돋을 새김하였다.

조성시기는 고려전기로 알려져 있다.

 

 

 

 

 

 


장춘사 오층 석탑

다른 곳에서 옮겨 온 석탑으로 전하며, 현재는 4층까지만 남아 있다.

하층기단갑석과 옥개석을 제외한 부재는 본래 부재인지 후보물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층기단 갑석 이하는 일부 매몰되어 있다.

 


하층기단 갑석

상부에 각호 2단 괴임과 상층기단 중석이 서로 맞지 않아 중석은 후보물로 추정된다. 

 


상층기단 갑석.중석

중석은 凹凸모습의 특이한 결구이다.

후보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는 사견이다.

 


초층탑신석

부등변 팔각으로, 초층 탑신만 팔각형인 경우는 유일한 적례 같다.

 


명문

이 명문만 확인해도 본래 부재인지 알 수 있을텐데.


 


자물쇠(?)

분명 자물쇠로 판단되는데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옥개석 층급받침은 위로부터 2*2*3*4이며 절수구는 생략되었다.

사다리꼴형의 탑신은 본래부재인지 모호하다.

 

 


노반

탑신과 더불어 사다리꼴이며 후보물로 추정된다.

 

 

 


배례석

석탑 앞에 있으며, 불상대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용왕각

 


석조부재(1)

이 부재가 오층탑의 본래 상층기단 중석의 일부가 아닐까?

 


석조부재(2)

석등대석.맷돌.노반

 


노반석

반파되었지만 오층석탑의 본래 노반석처럼 보인다. 

 

 

 

문화재 지정 당시의 오층석탑 지정사유가 무척 궁금하다.

아무리 봐도 답을 찾지 못 했기 때문에.


2019.03.09 

 

아래는

2002년글. 2006년 사진이다.

(글에 오류도 있지만 그대로 가져왔다)

 

 

업무차 출장길에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가다 보니 “장춘사 석조여래” 입간판이 커브를 도는 도로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우짠 행운인가. 내가 좋아하는 석불이 계시다니.. 낙엽 쌓인 만추에 우연히 잊고 지내던 옛님을 만난 듯 환한 웃음 지으며 급브레이크를 잡고 마을 안길로 통한 산길로 접어 들었지만 돌고 돌아도 산길은 이어지고 장춘사의 의미가 일장춘몽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잡스런 사고의 유희만 널부르지게 쌓여간다.

 

사립문

 

이름 없는 처사님들 월천공덕에 버금가는 적덕을 지었거니 생각도 잠시 기어코 후세에 거룩한 청신도, 청신녀 이름 석자를 남기고 싶어 산길 포장 불사자 명단을 나무아미타불를 새긴 비가 초라하게 보일 만큼 크게 절집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천왕문(?)과 사립문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 주불전이려니 하고 올라가니 으미 저것이 뭐냐?

유년에 내고향 마을에서 흔히 보았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대로 엮은 사립문이 마치 바자울 마냥 정겹게 길손의 손을 잡아준다.


가람배치는 뭐가 필요할 거냐는 듯이 민가의 솟을문 같은 절집 입구에는 한번도 닫힌 적이 없었을 것인 대문에 지국천왕, 광목천왕이 그려져 천왕문의 기능을 하고 있다

신라시대 무량국사가 창건 하였다는 장춘사는 무량국사가 일장춘몽의 향연을 즐긴대서 유래되었다는 안내문에 소 뒷걸음 치다 쥐를 잡았군 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 지으며 一場春夢의 場이 어떤 연유로 長春寺의 長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하지만 내 눈은 벌써 처마의 깊이가 유난히 얕은 대웅전 겹처마로 향하고 있다.

 

대웅전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이 주전이라고 미루어 짐작했지만 십우도(심우도)가 정겨운 주전각인 대웅전 뜨락에 내려 앉은 햇빛을 법당 가득 담을려고 서까래을 짧게, 물매를 적게 한 도편수의 맘을 잠시 훔치고는 만족한 웃음 허공에 날려 보낸다.

선방인 ㄱ자 형의 무설전은 대가집 사랑채마냥 툇마루의 전경이 한가롭지만 석탑에 이끌려 오층석탑 배례석 앞에서 고개를 갸웃갸웃, 두뇌는 혼자만의 픽션을 마음껏 푸르른 가을 하늘을 향해 퍼포먼스를 행하며 무지의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오층석탑


신라계열의 고려 석탑이라 하지만 5층은 멸실 되었고 안정감도, 날렵함도 내 눈엔 뵈지 않고 4,3,2로 줄어드는 옥개석 받침은 본디의 모습이 아닐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휘감는다.

 

 1층 탑신이 우주 대신에 각을 내어 팔각형, 기단은 ㅗ와 ㅜ를 짜집기(?)한 듯 하며, 사다리꼴 탑신도 퍽이나 이채로와 원의 영향을 받은 고려하대의 탑의 일부로 소설 한편 탈고하고 약사전의 석조여래로 발길 옮긴다.

 

凹와 凸이 뚜렷한 기단


석불은 간데없고 약사전에 금빛 찬란한 금불이 나를 노려 본다 간사한 중생 석불의 웃음은 미소고 금불은 조소란 말이더냐?

 하긴 높은 분의 낮잠은 오수로 표현해야 근사하고 우리 같은 놈은 냉수라는 말 보다는 찬물로 표현해야 푸근하지 않은가???

 

석조 약사여래

 

어떤 연유로 석불에 개금불사를 하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견편단의 법의는 뚜렷하지 못하고 통일신라 하대부터 보인다는 삼도는 보이지 않는다. 어짜피 한바탕 봄날의 꿈을 즐기는 장춘사인데 구태여 개금불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내가 문제지 다 마음속의 장난인 것을......

간사한 놈 먼 벽공을 배경삼아 주렁주렁 달린 감홍시, 설익은 만산홍엽을 보고도 가을의 서경을 느끼지 못하고 배가 고프다는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에 피식 웃음 지으며 감나무에 나를 묶어 놓고 산길을 되돌아 왔다.

 

글:2002.10월 / 사진:2006.06.24

 

성깔이 더러워 한 번 기록한 답사기는 두번 다시 써지 않는 습관 때문에 옛 답사기에 사진만 삽입했다.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