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나주시

나주...철천리 석불입상.마애칠불상

임병기(선과) 2018. 11. 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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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02일 글

(사진도 없고 글도 건방지고 두서 없지만 그냥 옮겨왔다)

 

오래전 남도 첫 답사부터 느낀 사실이지만 나주지역에는 유난히 무덤 장식이 화려하고 마을 입구에는  **김씨 세거지 등 선대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고을임을 알 수 있는데 그까닭이,백제 이전부터의 철의생산, 넓은 곡창과 해상교역의 교두보의 지역적 배경으로 인한 부의 축적과,고려 건국의 결정적 도움을 준 나주 호족 오씨 가문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저런 상념에 젖어 들어간 철전 1리(?)는  이름에 걸맞게 부촌인지, 명사를 배출한 동네 인지 마을 동구에 비석림과 공적비등이 처음 온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잘못든 길을 되돌아 찾은 석불입상 아래도 엄청난 불사를 완료한 미륵사란 사찰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륵하생을 빙자한 상생의 과욕이 빚어낸 어리석음로만 보여지는 것은 왜인지...

 

고려초 거대불이 왕건의 왕권강화 목적 외에도 새로운 문화사적 흐름의 태동이지만 백제,고구려,신라 민들의 민심 위무의 성격도 가졌기에 거대불은 대부분 정병을 든 관음보살, 사무외인,여원인 수인의 석가모니불을 조성했지만 민중들은 그냥 그대들의 잃어버린 고토를 수복, 옛영화를 돌이켜 줄 미륵불로 받아들였었다, 철전리 석불도 통인의 석가모니불로 보이는데 절집은 미륵사라서  그러한 상념에 젖게 한다.

 

민머리, 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얼굴은 사각형으로 살이 많이 올라 있다. 목에는 三道가 뚜렷하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에는 발목까지 늘어진 U자형의 옷주름이 보이고 광배는 배(舟) 모양이며, 두광에는 연화문이, 신광에는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다. 

 

 고려초부터 편히 지내던 석불의 최고 수난시기는 조선말로서, 학문적 소양, 타문화에 대한 이해력,변별력도 없이 일천한 유교 지식으로 무장하여 혹세무민하는 기인들과 손잡고, 우리나라의 많은 절집과, 불교 문화유적을 불태우고  훼손을 입혔던 것이다. 철천리 석불도, 경주근교의 원원사지 처럼 넓지 않은 터에 봉분이 자리잡고 있어 그 의도가 명백한데, 비석에 새겨진 "산황대신 지위", "창룡출운"이라는 비문이 눈에 들어온 순간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 지지 않더라.

 

가장 높은 곳에 무덤, 석불입상, 또다시 무덤,칠불석상이 자리하고 있어 지독하리만큼 끈질긴 무덤 주인의 염원이 당대에던 후대에던 발복했는지 자못 궁금스러운데, 밋밋하게 새겨진 동서남북에 좌상과 입상불은 원추형의  칠면불로  더욱 나를 미궁으로 몰아 넣는다.

 

 

마애칠불상

위 두 분의여래는 좌상

 

 

입상 4분

 

 

우리 장인들이 분명 이렇게 조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광부들이 잘라갔다는 설이 들린다.

 

그렇다면 9분의 부처님이 새겨져 있었을 것이며

고깔 정상에도 1분이 계셨다고 하니...

 

 

장흥,보성지방의 석불처럼 육계가 높다.

 

 

 

이상 4분

 

 

9분 마애불

정상에 계씬 분까지 10분의 마애불은 어떤 의미일까?

 

석불입상과 동시대 또는 후대에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철천리석불입상

 

광배,불신,대좌가 1개의 돌로 구성된 흔치 않은 석불입상이다.

불신에 비하여 대좌가 작아 불안정하다.

본래는 앙련과 대칭되는 복련을 새긴 하대석이 있지 않았을까?

 

주형거신광배는 겹동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고 두광 안에는 연화문과,화문을

신광에는 운문을 새기고 가장자리에는 화염문을 표현하였다.

 

소발,육계는 높고, 방형의 상호는 살찐 모습이다.

눈은 길쭉하며, 코는 납작하다. 입술은 다소 두툼해보인다.

목에는 삼도를 새겼다.

 

통견의 법의는 가슴을 덮고  U자형 습의는 발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다.

수인은 시무외인, 여원인으로 보이지만 시무외인을 아래로 향하였다.

 

고려초기 석불입상으로 전한다.

 

 

 

 

 

 

 

 

 

 

 

 

 

불상.무덤

추적추적 내리는 비

13년 만의 해후, 하지만 마음이 한참 꼬인 상태로 뵌 듯 하다.

 

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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