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로 대신한다
2018.11.04 |
아래는
2016년 글 이다.
효현리 삼층석탑...2006년 12월
효현리 석탑? 위 사진 올렸다가 성의없다고 어느 여인에게 지청구 묵은 생각이 엊그제 같다. 그 여인 요새 방구돌 타로 댕긴다고 정신 없다는데...
영조 6년(1730) 경주김씨가문에서 애공사지哀公寺址로 이름 붙인 절터이다. 그 근거로는 동경잡기권2 고적조의 부府의 사십리에 신라시대 창건된 절이 있는데 애공사라는 기록,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 및 동경잡기권1 능묘조의 법흥왕릉이 애공사의 북봉北峯에 있다는 기록을 기준으로 하였다. 즉 효현리 삼층석탑은 경주 객사인 동경관에서 서쪽 10리에 있다는 기록과 일치하며 서북쪽 고분을 왕릉으로 추정하여 애공사지와 법흥왕릉으로 비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애공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 27년조 및 진흥왕 37년조에 그 위치를 ‘애공사의 북봉’이라 하였으므로 법흥왕릉과 진흥왕릉은 모두 애공사의 북쪽에 조영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전)법흥왕릉 외에는 왕릉이 없어 애공사지는 아니며 효현리삼층석탑의 안태사찰은 불분명하다.
이중기단이며 하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1매석으로 다듬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려놓았다. 하층기단은 4매이며 상부에 2단 호각 괴임이 상층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2매의 판석이며, 부연을 표현하였다. 상·하기단 면석에는 양우주와 탱주 1주를 두었다. 전 층 탑신에는 양우주만 모각하였고 초층에 비해 2,3층 체감은 급격하다. 옥개받침 층급은 4단, 상면에 각형 2단의 탑신 받침을 조출하였고,낙수면 물매는 깊지 않다. 절수구와 풍탁공은 없으며 합각선은 뚜렸하다. 상륜은 결실되었다. 통일신라 후기 9세기 후반 석탑으로 생각된다.
그나저나 효현리 삼층석탑에 매료되었다던 어떤 여인네는 요즘도 자주 들릴까?
2016.05.05 |
아래는
2006년 12월 9일 글이다.
경주로 내려오면서 율동 이정표가 보인다. 인간 네비 광해가 대뜸 율동 마애와불 보았냐고 묻는다. 마애와불이 있다고? 최근에 사세 과시를 위해 조성한 사례는 있지만 신라의 와불이라니? 희미하게 선각되어 찾기가 용이치 않다고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법흥왕릉 못미쳐 효현리로 방향을 잡았다.
효현리 폐사지는 법흥왕이 들리기도 했다는 애공사로 추측하며 3층탑과 석조부재 몇기만 남아 있다. 탑을 보호하려는 듯 오래된 소나무 몇 그루가 드리워져 오늘 같은 날씨에는 꿈길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몸돌과 옥개석은 한개 돌, 받침은 4단, 경쾌한 곡선의 낙수면은 추녀에서 반전 되었다. 괴임은 2단이며 상륜은 멸실되었다. 상기단 면석에는 탱주, 좌우에 우주가 있다. 하기단은 4개의 돌이며 하기단 받침에는 각형과 호형 굄이 있다. 상기단 갑석은 판석으로 덮혀 있으며, 부연이 있고 초층 몸돌 받침은 각형을 2단으로 표현하였다.
폐사지. 겨울. 안개비 님이 계셨다면 금상첨화이었을텐데...
2006.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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