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논산시

논산...성삼문 묘소

임병기(선과) 2018. 11. 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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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옛글로 대신하며

사진 몇 장 업데이트한다.

 

 

 

 

 

 

 

2018.10.20

 

아래는

2007년 3월 11일 글이다.

 

하마비. 신도비

 

[ 성삼문 1418(태종 18) ~ 1456 (세조2) ]
조선 단종 때의 충신. 자는 근보, 호는 매죽헌, 홍주 노은동 외가에서 낳으려 할 때 하늘에서 '낳았느냐?' 하고 세번 묻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이름을 삼문으로 지었다고 한다.

1447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집현전 학사, 집현전 수찬, 직집현전을 거쳤다. 정음청에서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 이개 등과 함께 한글창제에 참여하여 요동에 유배되어 있던 명나라 음운학자 황찬에게 13번이나 다녀오는 등 연구에 참여하여 한글의 반포가 되도록 한 공로가 많았었다.

1455년 수양대군의 단종의 왕위를 찬탈할 당시 예방승지로 국쇄를 안고 통곡하였으며, 그 이듬해 좌부승지로서 아버지인 승, 박팽년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미리 발각되어 한강가(지금의 노량진역 부근)에서 다리를 꿰뚫고 사지를 찢는 처형을 받았다.

묘소

 

1456년 세조는 성삼문을 극형에 처하고, 그 육신을 팔도에 조리돌리개 할 때 선생의 한지체(一 肢體)를 지고 여름철에 현재의 성삼문재 (구리개고개)를 넘게 되었다. 무덥고 귀찮은 생각에서 시체에게 독설을 퍼붓자 '아무데나 묻어라' 하는 소리가 나서 현재의 자리(구리개 고개)에 묻었다고 한다.

김한(金閑)이란 사람이 이 고개를 넘어 근처에 있는 쌍계사에서 자는데 꿈에 한 장부가 나타나 '내가 있는 곳이 어찌 더러운지 모르겠다.'고 하기에 잠이 깨어 승려에게 묻자 성삼문의 묘소가 근처 옆에 있다는 말을 듣고 같이 가보니 백골이 드러나 있었다고 한다. 적삼을 벗어 백골을 싸고 묻고 봉분을 다시 했다고 한다.

사당 솟을문...무이문(無二門):오직 단종만이 임금이란 의미가 아닐까?

 

시호는 충문공이다.

유림들은 선생의 위덕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음력10월 그믐에 선생의 묘전에서 묘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성인각

 

글...논산시청 홈

 

2007.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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