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의성군

의성...등운산 고운사

임병기(선과) 2018. 10. 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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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들렸는데 풍수지리답사 글만 보인다.

 

우리카페에는 그런 분이 안계시겠지만 영주 부석사는 모르는 분이 없지만 경북 의성의 고운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답사 한두번 다녀온 사람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사무치는 그리움을 노래하지만, 부석사가 고운사의 말사라는 사실은 사무치게(?) 모르고 있다.

시대적 편년은 차치하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간 고운(孤雲) 최치원과의 연줄로 인해 高雲寺에서 孤雲寺로 바뀌었다고 한다.그래서인지 예전 서너번의 답사 시에는 등운산,우화루,가운루로 인해 떠도는 구름에 매여 도교와 관련성만 찾았었다.

고운사에는 연수전, 약사전의 석불,나한전,호랑이 벽화 등 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오늘 처럼 풍수적 관점의 답사는 처음이다.
이몽일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고운사는 風水寺라 할만큼 풍수와 관련성이 많으며, 雲자가 들어간 이름이 많은 것도 터가 부용반개형(芙蓉半開/반쯤 핀 연꽃)의 지세를 갖추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즉,연꽃잎에 해당하는 몇몇 산봉우리들이 사방에서 한 곳으로 모여들고, 각 봉우리 지맥들이 마치 꽃잎에 만개했를 때와도 같은 완만한 사면이 아닌 다소 급경사의 가파른 사면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 바로 부용반개형의 지세라는 것이다.

고운사에 가시면 나한전 앞의 작은 탑만 보고 오셨겠지만, 약사전 앞쪽의 근래 조성한 하얀 석탑이 바로 花心에 해당되는 곳이니 탑이 바로 꽃술이다.진위 여부를 떠나 고운사 사적기에 풍수의 비조 도선국사도 5층탑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계곡을 복개하여 원형이 손상되었지만, 조선왕실에서 연수전을 지었던 까닭도 고운사터의 명당성을 염두에 두었다하며,극락전 대웅전 고금당의 좌향이 앞쪽에 놓인 산사면 기슭에 걸쳐진 것도 시계의 절반은 지맥 몸체에 두어 좌향의 허함을 보하고,또 나머지 절반은 트인 골짜기를 향하도록 두어 부용반개 지세에서 초래될 수 있는 시각적인 답답함을 해소했으며,새롭게 단장한 가운루도 서쪽이 허한 고운사터를 비보해 주는 역활의 누각이라고 말씀하신다.

마루에 둘러 앉아 이런저런 사찰 풍수,생활 풍수, 양음택 풍수 이야기로 하루를 마감하였지만 풍수라는 주제를 갖고 떠난 답사여서 어느 답사보다 유익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름없는 지관을 초청하여 함께 하고픈 마음이었다.

2005.07.24

 

아래는 의성군청 홈페이지 글을 가져왔다.

 

고운사는 681년(신라 신문왕 1)에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 대사(義湘 大師)가 창건하였다. 연꽃이 반쯤 핀 형국[부용반개형상(芙蓉半開形象)]의 천하 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고운사(高雲寺)였다.

신라 말 불교와 유교·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如智) 대사·여사(如事) 대사와 함께 가운루(駕雲樓)[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羽化樓)를 건축한 이후 최치원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어서 고운사(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운사는 양쪽 계곡의 합류 지점 산록에 대웅보전을 세우고 주변 계곡을 메워 넓은 마당을 만들고 이미 건립된 건물과 조화로운 배치를 하였다. 구전에 의하면, 고운사를 에워싸고 있는 등운산(騰雲山) 주봉 아래 세 마리 거북 형상을 하고 있는 산봉우리[해발 538m]가 고운사의 주봉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산 지형에 따라 북쪽에 대웅전, 서쪽에 극락전, 동쪽에는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것은 신라 시대 가람 배치와는 다른 것으로 고운사의 지형적 특수성에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의 고운사 건물들은 대체로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과 1970년대 화재 이후 새로 건립된 것으로 본래의 가람 배치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일주문(一柱門)이라 할 수 있는 조계문(曹溪門)을 들어서면 계곡을 따라 ‘Y’자 형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이 ‘Y’자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앞쪽[남쪽]에 삼층석탑이 있고, 삼층 석탑 왼쪽으로 계곡을 따라 나한전, 요사, 고금당, 수월암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웅보전 오른쪽 뒤편 계곡 우측을 따라서는 약사전, 마거각, 적묵당, 요사가 배치되어 있고, 맞은편 안쪽에서부터 명부전, 삼성각, 삼층 석탑, 연지암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보전 오른쪽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조선 영조 때 어첩을 봉안하였던 연수전이 있고, 그 왼쪽에 고운대암이 있다. 대웅보전 앞쪽 조계문 방향으로는 계곡을 따라서 양편으로 건물이 배채되어 있다. 먼저 오른쪽으로는 고운대암과 ‘ㄱ’자로 인접해 있는 낙서헌[종무소]을 비롯해서 극락전, 우화루, 만덕당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고, 앞쪽으로 요사, 무설전, 열반당, 백련암[선 체험관], 용왕각 등 사찰 입구쪽으로 배치되어 있다. 왼쪽으로는 대웅보전 앞쪽의 종각을 시작으로 가운루, 고불전, 천왕문을 거쳐 조계문으로 나오도록 배치되어 있다.

 

 

조계문(일주문 )밖 산문을 비롯 전각들은 처음 뵌 탓에 낯설기 그지 없다.

 

 

일주문 현판

등운산 고운루. 불기2996년(19969년)

 

 

천왕문

 

 

동방 지국천.남방 증장천

 

 

서방광목천.북방 다문천

 

 

고불전

 

 

옛불상이 봉안되어 고불전인가?

일설에는 의성 방형 적석탑 4면 에 봉안되었던 석불중의 한 분이라고 한다.

 

 

석불좌상

광배와 불신이 한 돌에 조각되어 있다.

상호는 불신보다 볼륨감 있게 조성되었으나 크게 훼손되어 작은 육계만 식별가능하다.

귀는 짧고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옷주름이 무릎을 덮고 있다.

삼도는 불분명하고,수인은 항마촉지인이며,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하대 또는 고려초기로 추정된다.

 

 

철비.고불전 옆 위치 

 

현령이후용준李侯容準永世不忘碑

澤溢曁山 痼積快革 택일기산 고적쾌혁

永世曷諼 鑄銅屹立 영세갈훤 주동흘립

咸豊九年己未四月 함풍구월 기미 사월. 1859년

공의 은택이 온 산천에 넘치고, 고질적인 적폐를 과감히 혁파하시니,

어찌 영원토록 잊을 수 있으리오. 그 뜻을  철비에 새겨  높이 세운다.

 

 

가운루駕雲樓

계류 위에 서향하여 걸쳐 앉은 누(樓) 형식의 건물

 

여러 차례 중수한 기록이 전한다.

1676년(숙종 2)과 1717년의 중수기, 1899년 포운(抱雲)·혜은(惠隱) 등이 중수한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으로 된 중층 누각으로 상층(上層)인 누마루는 통칸으로 처리하여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누하주

 

 

상층인 누마루는 통칸으로 처리하여 우물마루를 깔았다.

 

 

동향한 정면은 계류를 바라볼 수 있게 개방시킨 후 계자각 난간을 둘렀으며, 양측면,배면에는 판벽을 설치하였다.

 

 

종각

 

 

극락전. 우화루, 가운루..

 

 

약사전.명부전, 나한전.연지암

 

약사전 앞쪽의 근래 조성한 하얀 석탑이 바로 花心에 해당되는 곳이니 탑이 바로 꽃술이다.진위 여부를 떠나 고운사 사적기에 풍수의 비조 도선국사도 5층탑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대웅보전

예불중이어사 조선후기의 후불탱은 사진에 담지 못했다.

 

 

선원

대웅보전 맞은편 자락에 나한전,삼층석탑과 자리하고 있다.

 

 

나한전

예전에는 대웅보전이 자리했었다.

 

 

 

삼층석탑

교구 본사에 있는 석탑임에도 불구하고  노반과 앙화가 뒤집혀져 있다. 

 

 

 

 

2층기단의 삼층석탑

고려전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하층기단

지대석. 기단저석과 중석이 일석으로 중석에는 안상 2기와 양우주와 탱주 1기를 모각하였다.

특이하게도 중석의 탱주 너비가 상층기단 중석, 탑신석 탱주 너비 보다 넓다.

물매가 있는 갑석 상부에는 각호 2단 받침이 조츨 되어 있다.

 

 

상층기단

엇물림으로 결구된 중석에는 양우주와 탱주를 새겼고, 갑석 하부의 부연은 다소 깊게 새겼다.

 

 

탑신

일석으로 양우주를 모각하였다.

 

옥개석

현수곡선은 뚜렷하지 않으며, 절수구가 있으며, 위로 부터 3.3.4 층급받침을 두었고 상부에 2단 괴임을 조츨하였다.

낙수면 물매는 급하며다

 

 

상륜부

노반, 복발과 앙화가 일석(?)

현재는 두 부재가 모두 뒤집힌 상태이다.

 

 

 

 

 

약사전

 

 

석조여래좌상

고운사에서는 약사여래불로 모신 듯 하다.

조성기가 발견되었는지 모르지만, 지물은 남아 있지 않다

 

 

석불좌상

광배와 불신.대좌를 갖추었다.

나발,육계는 작게 표현되었고, 백호공이 남아 있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았다.

이중턱, 목에는 삼도가 분명하다.
법의는 우견편단, 항마촉지 수인, 길상좌, 법의자락이 무릎 사이오 흘러 내려 대좌위까지 부채꼴로 마감하였다,


주형거신광배

두광, 신광은  두 줄의 선으로 양각하여 구분하였고, 두광 중앙에 연화문을 새겼고, 내연에는  연화문, 덩굴문을 표현하였고, 외연에는 화염문을 표현하였다.

 

여러자료에는 통일신라 9세기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석탑과 동시대에 조성되었다면 고려초기로 보고 싶다.

 

 

옛부재(?)

 

 

대좌

팔각 하대석의 복련(복원?),팔각중대석, 겹복련의 상대석

 

 

광배

 

 

 

연수전延壽殿

1774년(영조 20) 영조대왕이  내린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御帖)을 봉안하던 건물이다.

 

 

연수전 정문

 

 

 

연수전 편액 延壽殿扁額

연수전 사방의 벅면과 천장 위에는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노주석?

청수대?

 

 

극락전

만덕당.낙서헌과 ㄷ자, 맞은편에 우화루가 있어 ㅁ자 배치이다.

 

 

목조아마타 삼존뷸

대세지.아미타.관음보살을 모셨다.

 

 

 

 

 

낙서헌

종무소로 사용중이다.

 

 

만덕당

 

 

동종.만덕당 툇마루 한 켠에 위치

함풍구년기미칠월일 경상도의성고운사 주종중수삼백근 지전벽당○○○

(咸豊九年己未七月日.慶尙道義城孤雲寺.鑄鐘重數三百斤.持殿碧堂○○○)’이라고 새겨져 있어 1859년 조성

고불전의 철비와 같은 해에 조성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종견 아래에 범자가 사방 4곳에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우화루

 

 

우화루 벽화

범어사 호랑이 처럼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따라 온다.

 

 

해동조선국양종정사함홍당대선사비海東朝鮮國?宗正事涵弘堂大禪師碑
崇禎紀元後五乙卯九月日立 舫山居士 金州許薰撰
879년

 

 

수월대선사비 騰雲山孤雲寺水月大禪師碑
世尊應化二千九百四十六年三月日建 門人 大禪師 邆潭
1919년

 

 

부도전

 

 

 

선종소영당대사비 禪宗昭影堂大師碑
1706년

 

 

선종수월당대선사비 禪宗水月堂大禪師碑
1919년

 

 

연화당蓮花堂

 

 

 

 

부도를 확인하기 위해 들린 고운사

일주문 밖의 변화애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다음에는 많은 유물을 보관 중인 연지암 출입 가능여부를 탐문하여 참배 해야겠다..

 

20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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