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암 금정암은 지곡 김정한(1711~1766)선생이 1765년에 지은 중수기에 의하면 664년(신라 문무왕 4)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그후 사적은 전하지 않으며, 1710년 혜심대사, 그리고 1800년에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용담사의 산내암자로 산길을 제법 올라야 한다. 인법당인 화엄강단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요사인 전등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뒤편에는 산신각.천태각이 하나의 건물이고, 예전에는 조사진영을 모셨던 우상각이라는 특별한 이름의 전각이 옆에 있다. 절 아래쪽에는 부도비와 부도전이 자리한다.
화엄강당. 용담사의 강학공간 정면 8칸, 측면 3칸의 ‘ㅡ’자형 건물이다. 맨 좌측의 2칸은 부엌이고, 그 우측으로 법당 3칸·온돌방 2칸·창고 1칸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다. 부엌의 정면은 판벽으로 막고 측면과 배면에 출입문을 내었으며, 나머지 정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법당의 정면 3칸에 나 있는 쌍여닫이문 중에서 좌측과 우측 칸의 창호에는 창틀 중앙에 작은 기둥인 가운데설주가 세워져 있다. 이런 창호를 영쌍창이라 부르는데, 18세기 이후부터 그 자취를 감추고 있는 고식이다. 배면에는 북향으로 인해 불리한 채광을 고려한 듯 비교적 많은 창호를 설치하였다.
1800년(庚申) 화엄강당 중수 때 편액으로 전한다.
갑술초추지부서 甲戌初秋知府書. 오연상 吳淵常(1765~1821) 오연상의 이력으로 보아 안동부사로 재직 당시에 남긴(갑술년.1814년) 편액으로 추측된다. 오연상(1765~1821)...출처/다음백과 1800년(정조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正字)를 지냈고, 내각에서 문관들을 강제(講製)하였다. 다음해에는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802년(순조 2)에는 감찰을 역임하였으며, 이어 3년 동안 정언(正言)·부교리(副校理)·검상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805년에 장령(掌令)을 거쳐 부응교(副應敎)·형조참의·승정원동부승지 등을 지낸 뒤, 이듬해는 이조참의가 되었다. 이어서 영흥·남양의 부사로서 외직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병조·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811년에는 영변부사로 부임하여 당시 가산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洪景來)의 난에 민병을 이끌고 성을 수비하였으며, 태천지방을 탈환하여 난의 우두머리인 변대익(邊大益)을 주살하는 공을 세웠다. 그 뒤 도총부도총관이 되고, 이후 한성부의 좌윤·우윤을 거쳐 예조참판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등을 역임하였다. 다시 안동부사로 부임하였으며, 어머니의 상을 치른 뒤 이조참판·부제학(副提學)·도승지·비변사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약암집』 10권이 필사본으로 전한다.
중앙 기둥의 살미는 아주 큰 용두각(龍頭刻) 하나로 장식하고 그 나머지는 살미 둘씩을 둔 이익공으로 짜 맞추었다. 중앙 다음 첫째 기둥은 용두각보다 덜 화려하게 앙서와 수서 촛가지의 밑에 연화로 초각하고, 그 다음 두 번째는 간략하게 두 촛가지를 직절하고, 그 다음은 첫째와 같게 하였으며, 맨 마지막은 두 번째와 같은 모양으로 꾸몄다. 지붕의 용마루 양 끝에는 취두(鷲頭)를 얹어 장식하였다
화엄강당은 인법당으로, 우측 2칸 부엌.법당 3칸.방 2칸.창고 1칸 배치이다.
우리나라에서 전면에 툇마루를 깐 사찰은 흔치 않으며, 안동 개목사.강화도 정수사에 작례가 있다.
화엄강당 삼존불
칠성여래 화엄강당 툇마루 측면에 모셨다. 강당 법당내부에는 단청이 없으며, 툇마루 천정에 벽화가 가득하다. -.스님.법당에는 단청이 없습니다. -.공부하는 도량에 벽화가 알록달록하면 공부가 되겟습니까?
스님께서는 학이 아니라 봉황이라고 말씀하셨다.
조왕신 측면 부엌 전면에 모셨다. 공양간 문
돌쩌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화엄강당 측,배면
전등전 傳燈殿 현재는 주지스님이 거주하시는 공간이다. 본래 기능은 무엇이엇을까? 법등法燈을 전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런지.
시료정사 時了精舍(?) 전등전 傳燈殿
삼성각인 줄 알았으나 산신을 모신 산령각,천태산에서 득도한 나반존자를 모신 천태각이었다. 칠성여래는 화엄강당 전면 툇마루 측면에 모셨다.
전각 내부에는 불단 없이 벽체에 불단을 걸고 산신과 나반존자를 모셨으며, 전면 툇마루를 예배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산신도
독성도(나반존자)
부도비와 부도
유명조선국일도선사선교양종웅파당지비 有明朝鮮國一都禪師禪敎兩宗雄波堂之碑 1838년에 세운 웅파스님이 부도비이다. 비각은 1987년에 세웠다.
이수 구름문양, 학이 새겨져 있다.
부도전
옥암당탑 玉岩堂塔 동일 인물 여부는 확인 못 했지만 해남 미황사 상부도전 아래쪽에도 옥개석이 결실된 옥암당 부도가 있다.
당호를 새기지 않았다. 비각에 있는 웅파당스님의 부도로 추정된다.
폭염 엄청 나게 많은 땀을 쏫아낸 나의 몰골을 보신 스님께서 전등전으로 부르시더니 따뜻한 보이차를 권하셨다. 난생 처음 보이차를 여러 잔 마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주셨으며, 우리문화유산에 조예가 깊으신 스님이었다. 특히 가야산 주변 합천, 성주의 폐사지는 훤하게 이해하고 계셨으며,얼마전 가야산 정상부근에서 발견된 석조비로자나불은 해인사 스님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정이 넘치고 특히 절집에 오신 사람을 그냥 보내지 않으시려는 스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
산아래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안동 대사리 모전석탑 부근이다. 2018.0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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